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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000] H마트에서 울다

by 신난생강 202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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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그날 밤 엄마 옆에 누워 있으려니 어렸을 때 차가운 발을 녹이려고 엄마 넓적다리 사이에 슬며시 발을 끼워넣던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부르르 떨면서 속삭였다. 널 편안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고통도 감수할 거라고, 그게 바로 상대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 부츠가 떠올랐다. 내가 발이 까지지 않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도록 엄마가 미리 신어 길들여놓은 부츠가. 나는 이제 어느때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부디 내가 대신 고통받을 방법이 있기를.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엄마에게 증명할 수 있기를, 엄마의 병상에 기어들어가 엄마에게 바짝 몸을 밀착시키기만 하면 그 무거운 짐을 내가 송두리째 흡수해버릴 수 있기를. 인생이 공평하려면 자식 된 도리를 다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자기 안에 품고 다닌 몇 달 동안 엄마의 온 뱃속 장기들이 나라는 존재에 밀려나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고,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동안 엄마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그 고통을 보상하려면 지금 내가 이 고통을 대신 짊어져야 마땅했다. 그것이 외동딸에게 주어진 의례가 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가까이에 누워 있는 것밖에 없었다. 엄마의 지원군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규칙적으로 느리게 울리는 기계 신호음과 나지막이 쌔근거리는 엄마 숨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호기롭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울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서관 한쪽에서 이 책을 펼쳤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지만 제목부터 'Crying in Hmart'였고 시작과 동시에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가 엄마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 망설였다. '엄마'만 해도 눈물 예정인데 거기에 엄마의 죽음이라니. 그런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다. 최근에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진 내게 벌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의 불화와 원망의 마음을 읽으면서 위로받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옮겨 적어둔 단 한 문단이 위의 인용이다.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 꾹꾹 눌러쓴 글. 눈물을 훔치며, 죄책감을 느끼며 눌러썼다. 참 엄마에 대한 마음은 이중적이다. 그 사랑은 너무 큰데 얼마나 쉬운지 미운 마음이 불쑥 자주 솟구친다. 나의 미움은 대체로 죄책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극복하고 싶은데 연인 관계처럼 '안녕' 하고 돌아설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쿨할 수가 없다. 상처 내지 않기 위해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둔 말은 원망하는 마음을 키웠다. 그렇지만 세상에 엄마가 없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미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남의 글을 빌려서라도 엄마의 사랑을 다시 깨우쳐야지 하는 마음으로 저 글을 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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