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저녁 식사 M.B 고프스타인
‘할머니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빠르게 아침식사를 하고 물고기를 낚으러 호수에 가서 하루 종일 머무른다.’
이 간결한 한 문장이 대단한 이유는 우리 모두 알 것이다. 매일, 새벽 5시, 아침식사, 하루종일 같은 단어들은 예사로운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모두 한 문장에 들어갔고, 이 문장의 주어는 할머니이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이 문장이 이어져왔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놀라움이 간결한 그림체, 단정한 작은 프레임에 그려졌다. 할머니의 저녁 식사가 대단한 책이 된 이유가 그거 아닐까.
루틴(routine)이라는 단어는 한 때 간호사였던 내가 거의 매일 쓰던 용어였다. 어느 날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어 있었다. 루틴을 사전에 찾아보았다. 영어니까 영어사전으로 검색. routine.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 그리고 내가 찾은 사전엔 ‘(지루한 일상의) 틀, (판에 박힌) 일상’이라는 설명 앞에 작은 회색 글씨로 ‘못마땅함’이라고 적혀 있다. 귀엽다.
과거엔, 그러니까 코로나 시대 이전엔 루틴이라는 말이 일상에서 사용될 때 그리 긍정적인 용어가 아니었고 지루하고 판에 박힌 일상을 뜻하는 못마땅한 단어로 통용되었던 것 같다. 반달씨도 옛날 사람이라 루틴이라는 말을 질색한다. 그러다가 모든 게 변해버리고 집 안에 갇히게 되자 우리 모두 그 속에서 하루를 가꾸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루틴이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의 한가운데 우뚝 섰다. 사람들은 코로나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시간 계획을 하고, 순간들을 기록했다. 집에 있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낭비하는 시간을 루틴이라는 마법이 나타나 해결해주었다. 그저 매일 같은 것을 하면 되니까. 그렇게 일상을 정돈하는 데 루틴이 쓰였다. 비즈니스맨, 운동선수들, 예술가 등 대단한 업을 쌓은 많은 사람들도 창의력이 필요한 영역 밖에서는 루틴화 된 일상을 꾸려가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루틴을 꾸리고 인증도 하고 서로 격려하며 좋은 일상을 만드는 일이 익숙하다.
올해 나는 아침식사를 기록하는 것을 내 루틴으로 삼고 매일 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당연히 거르는 것이었는데 퇴사원이 된 이후로 무려 조식을 챙겨 먹는 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식사 기록을 하는 여러 앱을 둘러보고 최종 Otter라는 앱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 다이어트 식사 기록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서 그냥 사진만 하나 훅 찍어서 기록해둘 수 있는 것이면 충분했다. 그래도 조금 예쁜 걸 찾느라 1,200원을 주고 다운로드하였다. 모든 식사를 기록하는 것도 아니고, 아침 식사만 기록한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매주 인증을 한다. 건강한 식사를 하는 루틴을 만들려고 했던 건데 사진을 찍어서 인증을 하다 보니 몇 개월 사이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어서 요즘은 아침식사 시간을 늦춰 브런치로 식사를 하고, 그마저도 간단하게 먹고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빠르게 아침식사를 하고 물고기를 낚으러 호수에 가서 하루 종일 머무르는 할머니. 이 책의 제목은 할머니의 저녁 식사이다.
할머니의 저녁 루틴도 궁금하지 않은가?
이 이야기가 주는 단단함이 좋았다. 무르기만 한 내가 절대 다다를 수 없는 무엇. 강렬하지는 않지만 강한 일상. 나도 언젠가 할머니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는 이런 단단한 일상을 살게 될까. 아니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새로운 무엇을 추구하는 호기심 많은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나. 아마도 더 살아가면서 지혜로워져서 이 두 가지의 삶을 적절히 갖추고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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