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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000] 달까지 가자 >> 가상화폐 투자 소설

by 신난생강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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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몇 번 마주치고 나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음식, 책, 노래, 이성도 자주 마주치다보면 인연이 되는거지. 그런 게 타이밍 아닐까. 이 책이 그랬다. 「달까지 가자」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몇 번이나 마주친 기억이 있지만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책.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음에도 이 '달까지 가자'가 그 '달까지 가자'일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었던 빈약한 상상력이라니. 몇 주 사이에 몇 권의 읽고 있던 책 속에서 「달까지 가자」를 소개한 구절을 만나게 되었고 가상화폐 투자 이야기가 소설의 주제가 되다니, 거기다 세 명의 여성의 이야기라니 몽글몽글 올라오는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이미 신간 코너 자리를 다른 책에 내어주고 뒷방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이 처음이 아니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가. 단편소설을 읽는 프로젝트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이 책을 다시 읽어야지 하고 떠올렸었다. 실행에 옮기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끝난 프로젝트이지만, 언젠가 하게 된다면 꼭 이 책을 포함시킬 것이라는 건 변함없다. 월급을 카드포인트로 받게 되어 중고거래를 이용하는 기가 막힌 거북이알의 이야기가 어찌나 어이없고 발랄하고 재미있었는지 떠올라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장류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 「달까지 가자」였다. 이걸 어떻게 몰랐지? 

 

 

내겐 이 모든 게 2017년 5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단 여덟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업계에서는 꽤 잘나가는 마론제과의 무난이들. 다해, 은상, 지송 세 명의 이야기이다. 공채가 아닌 이 세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 해 동기처럼 친한 친구가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평가등급은 항상 중간인 M. Meet requirement. 이들은 그냥 '무난'이라고 부른다.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를 '박사'라고 불리는 사람의 상여금이 5억이었다는 얘기를 나누며 무난이들은 박탈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은상 언니가 밝은 얼굴로 디저트와 커피를 쏘고 가상화폐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도 하자고. 이 언니는 7천원 대에 처음 이더리움을 샀고, 9천원일 때, 1만원일 때 추가 매수를 했다. 다해와 지송은 각각 다른 시점에 이더리움에 합류하고, 이들은 함께 To the moon을 외친다. '도약 상실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뜬금없이 열린 포털 같은 것이니 기회를 잡으라고 이끈 은상 언니. 이런 언니 나도 필요하다고. 심지어 계속 의심했던 지송이에게 EHT를 20개나 줬어!!!  

 

나는 2020년 가을에 가상화폐를 알게 되었고 투자를 시작했다. 과거 수많은 J곡선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늦었을까 한숨을 많이 쉬었다. 부자가 될 기회를 몽땅 날려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들에 관심이 별로 없다. 이 말인 즉, 큰 부자가 되긴 애초에 글러먹었다는 말이다. 결국 돈이 있는 곳에 사람들의 욕망이 몰리는 것이고, 욕망이 있는 곳에 돈을 벌 기회가 있는 것인데 이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냥 평생 공무원이나 하며 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트렌드를 공부하고 부지런히 따라가는 것이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걸 깨달았다. '언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자신감은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 세 사람이 계속 가상화폐에 투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랬다면 지금쯤 다해와 지송이도 집도 사고 큰 부자가 되었겠다. 요즘 가상화폐 시장이 떡락 중인데 지금 거래소를 열어보니 비트코인은 4천 4백만원, 이더리움은 3백 2십만원이다. 지금은 이미 늦었을까. 각자 판단에 달렸겠지만, 현물ETF의 시대를 논하고 있는 지금, 투더문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에 떡하니 박혀있는 2017년의 가격들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점쟁이가 세 사람 모두 '소련'과 합이 좋다는 뜬금없는 말을 하자 비탈릭을 떠올리며 이더리움을 더 홀딩하겠다 다짐한 이야기, 재밌다. 매도한 이후에 혹시 잘못됐을 경우엔 그냥 죽을 생각이었다는 대화도 떠오른다. 나의 우울한 업비트 백화점 계좌도 떠오른다.  

 

어수선한 시장에서 잠깐 재미있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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