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진화론에 대한 과학책 제목이 이토록 다정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여태껏 '적자생존'에 대한 오해로 winners take it all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그거 아니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실험을 덧붙여 친절하게 오해를 바로잡는 시도이다. 책 표지도 어쩜 이렇게 감각적인가 감탄을 했는데, 알고 보니 네 가지 버전의 책 표지가 있다고 했다. 버전마다 색깔도 그림도 다른데, 나는 하늘색 표지에 두 사람이 끌어안고 있는 내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책 표지 일러스트는 엄유정 작가님의 작품이라고. 역시. 목포 여행 중에 동네산책이라는 북카페에 가서 이 책을 샀다. 새롭게 생각하고 있는 일상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 책을 골라오며 시작했다. 1주 1책. 한 주동안 책 한 권과 한 몸이 되기. 책을 노트 삼아 일정도 적고, 생각나는 건 기록하는 노트로도 쓰고, 밑줄도 마구 긋고, 책꾸도 하고... 나의 일주일을 오롯이 한 권의 책에 담는 여정이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새로 하나 팠다. 주책. @1.week_1.book
진화의 성공 비밀은 친화력과 용기
지구상에 가장 성공한 종중에 하나는 개다. 우리는 인간이 야생의 늑대를 길들여 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개는 사람이 길들이지 않았다.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먹이를 얻기 위해 스스로 인간 곁으로 왔고, 이 용기 있고 친화력 높은 개체들끼리 번식하며 스스로 가축화하며 살아남기에 성공했다. 살아남은 비결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친화력과 용기라고 말하는 이 이야기가 참 좋았다.
이 책은 친화력이 좋은 개체들이 대를 거듭하며 가축화가 되면 외모도 귀엽게 변하고, 호르몬도 달라지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인지능력도 변한다는 것을 여러 동물들의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요즘은 이 '가축화'가 진화 과학의 대세라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도 이런 자기 가축화를 통해 진화에 성공했다. 우리는 귀여운 개체에게 더 관심을 주기 때문에 동안이 진화에 유리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이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모든 낯선 이를 잠재적 친구로 대하는 동물, 보노보
콩고에 가면 모든 낯선 이를 잠재적 친구로 대하는 보노보가 살고 있다. 보노보는 다정함으로 무장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히피 유인원이라고 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침팬지와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먹이 하나도 이웃과 나누고, 남들과도 기꺼이 나눈다. 보노보 암컷은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함으로써 아버지가 누구인지 혼란을 빚어 수컷이 새끼 보노보를 죽이지 못하도록 하고, 암컷들은 단결하여 수컷에 대항한다. 수컷 보노보는 엄마 보노보를 통해 여자 친구를 소개받는 마마보이다. 아기 보노보들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뭐든 다 할 수 있는 말썽꾸러기다. 그런 천진함이 좋다. 나는 이제 얼굴을 보고 침팬지와 보노보를 구분할 수 있다. 사납게 생긴 건 침팬지이고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귀여운 쪽은 보노보다. 다정함이 외모에 발현된다.
"나 보노보한테 반했어요. 다음 생에는 보노보로 태어날래요."
내가 이렇게 보노보의 다정한 매력에 푹 빠져 반달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90분마다 짝짓기를 하는 정력왕인데, ㅋㅋㅋ 그래서 반한 건 아니죠?"
반달씨도 귀엽고 다정해서 성공했다. 40살인데 왜 이렇게 귀여운 거냐.
이런 가축화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적에 대해서는 아주 잔인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우리 인간도 똑같다. '우리'에게는 다정하지만 '적'에게는 죄책감 없이 총구를 겨눈다. 하지만 '적'이 정말 죽어도 되는 존재인가. 위협하는 존재를 비인간화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집단은 역으로 다른 집단 사람들을 비인간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본능은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조작되고 이용된다. 항상 다정할 수 있는 보노보가 사는 환경은 자원이 풍부하여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서열과 상관없이 충분한 먹이가 보장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생각해 봐야 한다. 침팬지처럼 경쟁하고 전쟁을 일삼는 우리가 갑자기 다정한 보노보가 될 수는 없지만 무엇이 우리를 싸우게 만드는지, 어떻게 하면 다정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과학을 통해 성찰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더럽고 잔인하고 짧은' 승리자의 인생이 아니라 용기 있고 다정하고 귀여운 부자 할머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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