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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000] 광기와 우연의 역사

by 신난생강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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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표지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어떤 예술가도 매일 24시간을 쉼 없이 예술가로 있을 수는 없다. 예술가가 이루어낸 본질적이고도 지속적인 것은 아주 드물고도 짧은 영감의 순간에 창조된 것이다. (...)
한 명의 천재가 나오기 위해서는 한 민족 안에 수업이 많은 사람이 태어났다가 사라지게 마련이고, 진짜 역사적인 사건, 인류의 별 같은 순간이 나타나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평범한 시간이 무심히 스러져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예술의 영역에 나타난 한 명의 천재는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마찬가지로 역사상의 별 같은 순간은 이후 수십 수백년의 역사를 결정한다. (...) 단 한 번의 긍정이나 단 한 번의 부정,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은 일이 이 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개인의 삶, 민족의 삶, 심지어 인류 전체의 운명의 흐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작용하게 될 중대한 결정이 응축된 운명적인 순간이란 개인의 삶에서도 드문 일이고 역사의 흐름에서도 드문 일이다.

그런 드문 열두 가지의 별 같은 순간들을 기록한 책이다. 원제가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이라고 한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가 더 임팩트 있기는 하지만, 원제를 보고 나니 아주 과하게 힘준 것 같아 괜히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시작은 동로마 제국의 최후이다. 이 챕터를 읽고 나면, 왜 이 책의 맨 앞에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되는데, 명목 뿐인 동로마 제국의 비잔티움을 공격하기로 한 오스만 제국의 새로운 파디샤 메흐메트. 얼마 전 「페스트의 밤」을 읽어서 요쪽 동네 용어들을 좀 안다. 메흐메트가 비잔티움을 정복하겠다는 광기로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무너뜨릴 대포를 개발하고, 함선을 산을 넘어 이동시키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작은 실수에서 전쟁의 승패가 갈린다. 성벽 안쪽 작은 문들 중 하나 '케르카포르타'가 누군가의 실수로 잠겨 있지 않아 이 문을 통해 오스만 군이 너무 쉽게 성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무관심 탓으로 잊힌 문, 케르카포르타. 

 그러나 후회한다고 잃어버린 순간이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역사에서나 한 인간의 삶에서나 마찬가지의 진리다. 소홀히 했던 단 한 시간은 1,000년을 주어도 되살 수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 동로마 제국의 최후에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소홀히 했던 단 한 시간' 저 말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되내어본다. 

 

https://www.news1.kr/articles/4421334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영원한 우상' 슈테판 츠바이크 탄생 140주년

사실 앞에 겸손한 민영 종합 뉴스통신사 뉴스1

www.news1.kr

12개의 에피소드가 각각 다른 문체로 쓰여졌고, 이야기의 흡인력에 읽다 보면 훅 빠져든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사람이 대단한 스토리텔러라는 말인데, 이 책이 전부 남자들의 이야기라 작가가 쓴 「마리 앙투아네트」나 「메리 스튜어트」의 이야기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중국에서는 「메리 스튜어트」가 독일 문헌 번역서 중 가장 많이 읽혔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에피소드는 <대양을 건넌 최초의 말>이었다. 1858년 7월 28일, 대서양 해저 케이블 설치 에피소드다. 사이러스 필드라는 사람은 일찍이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어 젊은 나이에 큰 재산을 모아 은퇴한 사람이었다. 필드는 뉴욕에서 미국 북동쪽 끝에 있는 뉴펀들랜드까지 케이블 설치 투자를 부탁받았고, 그때 생각한다. 뉴욕에서 뉴펀들랜드까지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다면 뉴펀들랜드에서 아일랜드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19세기의 바벨탑에 비유된 이 작업은 36만 7,000마일의 전선이 단 한 줄의 케이블 안에 들어가는데, 지구를 열세 바퀴나 감을 수 있고, 지구와 발을 연결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 길었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 과정을 츠바이크의 문장으로 함께 호흡한다. 

하나의 기적이 혹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이 기적을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적 같은 일을 이루어낸 업적을 보면 사람들은 감동한다. 이 감동스토리의 시작은 기적을 믿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대서양 해저 케이블 같은 건 살면서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야기였는데, 동로마 제국의 최후,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와 사형 직전의 도스도옙스키 같은 에피소드들과 함께 읽고 보니 왜 이런 역사 이야기는 아직 본 적이 없었던 건지 의아해졌다. 

 

일주일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보냈다. 괴테 따위는 다시는 읽지 않겠다 다짐했고, 소홀한 한 순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즐거운 일들에 몰입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무엇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매 순간 쌓아온 나의 시간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우연 같은 기회가 왔을 때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잘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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