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정유정×지승호
시작은 '주인공'이었다. 예전에 쓴 독서노트를 넘기다가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한 글을 필사해두고 주인공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글을 얼핏 보고 지나친 며칠 후 드로우앤드류의 책 「럭키드로우」를 읽다가 여러 번 반복되는 '주인공'이라는 말에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면서 이 책의 '주인공'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독서노트에서 이걸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도서관에 가서 다시 책을 빌려왔다.
나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종의 기원」으로 입문했다. 간호사 출신의 소설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 2층 침대 구석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간호사도 이야기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이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고, 책을 한달음에 읽어버리고 나서는 이야기의 스케일에 기가 죽어 생산자가 되기를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정유정 작가의 팬이 되었다. 장편을 쓰기 때문에 다작하지는 않지만, 작품들 모두 아주 생생한 입체적인 이야기들이라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다. 「7년의 밤」을 가장 좋아하는데, 퇴근 후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해 문자 그대로 '가슴 터질 듯한 새벽을 선물' 받은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라는 책을 몇 해 전에 읽었을 때에도 소설들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도 아, 다시 읽고 싶은데.... 이 책이랑 나란히 놓고 다시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몇 번이고 다시 읽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알라딘 장바구니에 책을 잔뜩 담아두었는데 고민 백 번을 하면서 일단 진정됐다. 바구니 가득 사서 쌓아둔 세계사 책들을 해결하고 나면, 진짜 도전해보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직접 설명한 해설서와 함께 소설을 읽는 건 어떤 재미일까,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제는 그걸 해 볼 시간도 있다고 생각하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주인공'이라는 말에 꽂혀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이번엔 주인공의 조건이라는 내용에 크게 감흥이 없다. 과거의 나는 작가가 이야기한 '주인공'처럼 내적 욕망을 위해 의지를 갖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같은 걸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이 나의 문제에 닿아있지 않은 탓이다. 물론 이번에도 독서노트에 잔뜩 베껴 써 두긴 했지만, 그것보다 이야기에 대한 내용에 더 관심이 생겼다. 매일 좋은 콘텐츠에 관해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이번엔 스토리텔링에 대한 내용이 더 재미있다. 어떤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가 닿을까.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은유다. 그리고 문학은 은유의 예술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이야기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야기는 '변화'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 쓰기에 관한 책이어서 크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소설 속 인물들이, 배경이, 이야기가 어떤 고민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추적하는 재미있는 책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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