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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OKS

[52/1000] 지구 끝의 온실 >> 멸망 후의 세계

by 신난생강 202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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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º 모든 소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까? 그러면 SF도 마찬가지로 '결국은 인간 이야기'로 수렴되는 것일까? 

º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나머지, 별들이 주인공인 것이 분명한 밤하늘을 보면서도 인간을 생각하고, 개성 넘치는 생물로 가득한 심해를 보면서도 인간을 생각한다. 

º 어쩌면 유독 인간 바깥의 무언가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이 SF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곰팡이가 미로를 피해 균사를 뻗치고 개미를 조종할 때, 꼭 거기서 어떤 인간적인 교훈을 추출해내지 않더라도 그냥 곰팡이가 그런 존재라는 게 재미있는 사람들. 때로는 우리가 개별적 개체에 갇혀 전체를 사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곰팡이처럼 감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가 상상하고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바깥에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가슴 벅차게 설레는 이들이라면.

º 「지구 끝의 온실」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도 그랬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같이 지구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점과 점 사이를 잇는 무수한 실선들의 이미지. (.......) 멸망한 지구를 뒤덮을 비인간 존재는 무엇일지 정해야 했다. (......) '인간 없는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번성할까?'

º 어쩌면 좀 과다하게 부풀려온 인간존재의 중요성을 조심스레 축소해 제자리에 되돌려놓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지각과 감각의 한계를 잠깐이라도 넘어보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SF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우리의 오랜 천동설을 뒤집는다. (......) 마찬가지로 SF를 읽으며 인간이 잠시 변두리에 놓이는 경험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우리는 인간이 비인간 존재들과 동등하게 다뤄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다가도 그래도 이건 결국 인간 이야기인데...... 하며 아늑한 천동설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게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고, 우리는 거기서 완전히 떠날 수 없다.

 

http://ch.yes24.com/Article/View/48174

 

[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결국은 인간 이야기’라는 말 (1) | YES24 채널예스

소설은 인물과 배경, 사건으로 구성된다. 소설에는 독자가 이입할 만한 인물 혹은 유사 인격체가 필요하다. (2022.03.08)

ch.yes24.com

http://ch.yes24.com/Article/View/48277

 

[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결국은 인간 이야기’라는 말 (2) | YES24 채널예스

부재함으로써 마침내 존재를 증명하는 어떤 존재들, 그것은 반드시 인간을 닮은 존재일 필요는 없다. (2022.03.23)

ch.yes24.com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윌라로 들으면서 김초엽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그런 나를 SNS 알고리즘은 채널예스의 연재 글로 연결시켰고, 이 글을 읽은 나는 바로 「지구 끝의 온실」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멸망해버린 지구를 뒤덮는다는 식물 모스바나보다 지구가 멸망해버리는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어떻게 하면 멸망시킬 수 있을까.

 

자가 증식 나노봇의 입자 크기를 줄이는 실험을 하던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극도로 소형화된 입자들이 통제를 벗어나 증식 오류가 발생했고 직원들이 폐쇄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아 입자들이 연구소 밖으로 풀려나 세계는 더스트폴이라는 먼지에 의해 멸망한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과 인간의 실수 혹은 업무 태만이 빚어낸 지구 멸망이라니 있을 법한 일이다. 가자~!!

 

강원도 해월시는 멸망 시대의 첫 돔시티였다가 폐쇄된 곳인데 갑자기 갈고리 덩굴식물이 주변을 뒤덮어 화제가 되고, 식물을 연구하는 아영은 해월시를 방문해 이 식물이 밤이면 푸른 빛을 내뿜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한다. 그리고 이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쫒다가 멸망한 세계의 온실이 있던 마을 프림빌리지와 모스바나에 대해 알게 된다. 

 

재미있는 게 돔시티 안에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조금 맛보자마자, 일부 살아남는 사람들이 생기는 멸망은 최악의 멸망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떤 사람들이 살아남아 돔시티에 입주하게 될지 눈에 빤하게 보이지 않는가. 안전 공간이라 여겨지는 돔시티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그 중에 여자들이 모여 살게 된 온실이 있는 마을. 온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식물, 모스바나. 그리고 관계, 약속, 레이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읽는 것, 좋다. 

단편도 좋았지만, 긴 호흡으로 읽는 장편을 더 좋아해서 이 책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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