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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000] 아무튼, 산 >> 산에 갈 수 있을까?

by 신난생강 202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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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 장보영

 

어릴 때 주말이면 종종 가족끼리 등산을 했다. 아빠 손에 이끌려 오르는 산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했고, 등산은 힘들기만 했다. 얼마 전 엄마랑 산에 오르면서 옛날 등산하던 일을 이야기해보니 엄마에게도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새벽부터 일어나서 4인분의 아침을 하고 점심 도시락까지 싸야 했던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아빠는 모험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던지 항상 가던 산엘 가고 또 갔다. 금정산, 달음산, 다니던 절이 있던 천성산. 내 등산의 기억은 거의 여기에 머문다. 그리고 주말 아침마다 배가 아팠다. 

 

나이가 들었는지 몇 년 전부터 문득 산에 오르고 싶었다. 어른의 취미 같은 것인가. 분명 그래서 구리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나무 숲이 좋아졌고, 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이 좋아졌고, 운동을 하며 숨이 차는 감각이 사는 데 위안이 되었다. 일상이 지쳐 나를 극복하고 싶었고 전시하고 싶은 경험이 필요했다. 등산은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는 메달 같은 거 아닐까. 내게는 그런 것이었고, 늘 에너지 부족으로 후순위로 밀렸으며 도전해보고 싶은 무엇으로 남았다. 이 책은, 정확하게는 내가 다니는 도서관 스티커가 붙은 이 책은 저런 생각을 하던 과거의 내가 신청 도서로 도서관에 들여놓고 정작 읽어보지도 않았던 책이었다. 도서관 구석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아, 이 책.... 그래, 산에 가고 싶었지?' 

 

저자는 스물다섯에 싸이월드 동호회에 참가하여 첫 등산을 지리산에 올랐다. 모르는 게 용기였던 거 같은데 대단한 건 그럼에도 끝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말라야를 오르고, 산에 대해 쓰는 잡지사에 취직을 해서 산을 직장 삼아 살며 행복하다 느꼈다. 그리고 산을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멋진 사람.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찌만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이 예측한 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지만 내 예측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성취와 성공보다 더 멋지고 감동적인 좌절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래서 산을 올라보려고 한다. 등산을 제대로 하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하고, 갖춰야 할 것들도 많지만 일단 집 근처에 가까이 있는 산부터 올라보려고 한다. 그러면 본격적인 등산이란 느낌보다 산책 같은 느낌이라 부담도 덜 할 것 같다. 트래킹화만 있으니 신발끈 바짝 매고 일단 한 군데라도 가 보자. 가 보고 나서 뭘 사든, 말을 하든 하자고. 

 

이런 상태로 며칠이 지났다. 

산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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