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Convenient store, 그러니까 편의점 앞에 ‘불편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뭔가 있으니 일단 들어오라는 말이다.
웹툰 같다.
이게 나의 첫 느낌이었다. 찾아보니 김호연 작가는 이전에도 <망원동 브라더스>라는 동네 이야기를 펼친 적이 있었다. 영화, 만화, 소설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천후 스토리텔러라고 한다. 웹툰 같기도 하고 일본 단편소설 같기도 한 이 이야기들이 저자의 글 스타일인가 보다. 읽기에 부담 없고 재미있다.
서울역 인근 청파동, 주택가 모퉁이에 ALWAYS 편의점이 있다. 손님이 많지 않은 한적한 편의점이다. 서울역의 노숙자 독고씨는 지갑을 찾아준 인연으로 이 편의점 주인을 만나게 되고 편의점 야간 알바로 취직을 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으로 과거 기억을 잃었고, 말을 더듬고, 냄새까지 나는 노숙자 행색의 독고씨를 편의점 알바로 취직을 시켜준다는 것이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만화적인 설정이지만, 역사 교사 출신의 편의점 주인은 알바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멋진 분이다. 그렇게 독고씨의 불편한 편의점 이야기가 시작된다.
산해진미 도시락,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삼각김밥의 용도, 원 플러스 원, 불편한 편의점, 네 캔에 만 원,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아, ALWAYS
요즘이야 편의점이 건물 하나 건너 하나가 있을 정도로 흔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편의점은 비싼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동네 할머니들에게 1+1 상품을 권해주고, 손녀 손자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골라주고, 집까지 배달도 해주는 독고씨. 편의점 매출이 는다. 늦은 퇴근길 혼술로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술 대신 옥수수수염차를 권하기도 한다. 반말엔 반말로, 논리적인 혹은 엉뚱해서 황당한 대처로 제이에스, 그러니까 진상 손님들을 다루는 것도 아주 잘한다. 손님들은 독고씨와의 만남을 처음엔 이상하거나 불쾌하게 여겨서 피하고 싶어 하지만 묘하게 이끌려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고씨도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 나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독고씨의 정체. 이것이 이 <불편한 편의점>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아서 위로받는 이야기들이다.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어느새 멀어져 버린 자식들과의 갈등이 반복되어 나온다. 사랑하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원뿔원 삼각김밥과 초콜릿, 네 캔에 만 원 맥주 등으로 봉합되기도 한다. 소소한 편의점의 상품을 매개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그것들의 가격만큼 소소해서 부담이 없고, 픽 하고 웃어버리면서 경계심을 해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어 의외로 효과적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마도 그런 의도에서 이 이야기들도 시작되었겠지 생각하니 교훈적인 이야기라 식상하던 느낌을 메워주었다.
“여러분 이 채널 이름이 편편채널이지만 사실 편의점 일은 힘듭니다. 일이니까요. 무엇보다 손님이 편하려면 직원은 불편해야 하고요. 불편하고 힘들어야 서비스받는 사람은 편하지요. 저는 이걸 깨닫는 데에만 1년이 걸렸어요. 여러분도 짧은 알바 기간일지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세요. 저는 그런 불편한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상 오늘의 편편채널이었어요.”
“코로나가 심해져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하필이면 필생의 역작을 쓰니까 세상이 뒤집히고 난리지 뭐예요.”
정 작가가 마스크 위로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자신의 비극을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알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새벽의 편의점에서 우리는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 과거를 캐내기 위해 자신의 과거도 많이 털어놓았다. 나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절대 지치지 않는 그녀의 에너지가 부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대체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냐고? 그녀가 말했다.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라고.
소설 속 몇 안 되는 젊은 여성들은 똑똑하게 제 삶을 살아간다. 곧 세상 풍파와 자식들이 그들을 어지럽히겠지만 누군가는 편의점 사장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어른으로 남기도 하겠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거니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겠다 생각하니 거기서 조그만 희망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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