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 그거 얼만가요?

[3그램] NEVER GIVE UP

by 신난생강 2020. 8. 11.
반응형

수신지 작가님은 며느라기라는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예전에 즐겨 듣던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에서 그 이전 작품인 3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무렵 이 책이 궁금해서 찾아서 보았다. 김보통 작가의 아만자를 먼저 보았던 터라, 비슷한 내용일까 했는데 훨씬 담백한, 작가 본인의 암 투병기였다. 3그램은 난소 한 개의 평균 무게라고 한다.

내일 우리 동네 모임이 있어서 각자 집에 있는 책을 한 권씩 가져가서 나눠보기로 했는데, 가져가기 전에 먼저 읽고 가고 싶어서 조금 만만해 보이는 만화로 골랐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다시 읽기에 도전했으나 이 책의 울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3그램
국내도서
저자 : 수신지
출판 : 미메시스 2012.05.20
상세보기

비혼인 내게 며느라기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만화였지만 두세 번 곱씹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치면, 아직은 건강한 내가 3그램을 곱씹을 이유도 없긴 하다. 그러나 굳이 병이 아니라도 세상은 견뎌내고 싸워야 할 일 투성이이고, 살아가는 건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작가의 담담한 기술은, 죽음뿐만 아니라 모든 나쁜 일을 겪을 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엘리자벳 퀴블러 로스의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와 다르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닐 거야, 라는 강한 부정도 없고 심각한 분노도, 이로 인한 우울도 없다. 암 진단 이후 너무 빠르게 모든 일이 진행되어 생각할 틈이 없었다고 했지만 언제나 자신의 세포들이 이겨낼 거라고 응원했고, 빨리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정해진 치료 과정에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매일 밤 찾아오는 남자 친구를 기다리는 게 즐거웠고, 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수기를 읽는 게 힘이 되었다고 한다. 한 번도 이 과정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무엇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냐며 질문이 이해가 안 된다고 되묻는 작가님. 긍정왕이신 것 같다.

 

죽음이 코 앞에 닥쳤다고 느꼈을 때 지금껏 해 온 작품들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분명 열심히 했겠지만, 나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 것이 진짜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건강해지면 나의 작품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수기를 읽으면서 희망을 얻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분투 중인 사람들에게 그런 수기를 남겨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3그램이다. 온통 까만색으로 칠해져 있는 페이지가 몇 장이나 된다. 과연 저 문을 나가게 될까? 했던 그 병원 문을 나선 이후 페이지는 밝아지고 마지막엔 꽃분홍색도 활짝 핀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구에게서라도 욕을 먹겠지만, 암을 진단받는 것을 동경해본 적이 있다. 그 터널을 지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살아서 온전하게 그 터널을 지나와야 이룰 수 있는 꿈이겠지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길 수 있게 될 때가 되어 서야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의 눈치라는 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이라는 게 항상 슬펐고, 답답했고, 아직 나의 자유 찾기는 미완성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싶지만, 항상 죽음 언저리를 동경하기도 한다. 정신과 선생님이 칭찬받아야 하는 아이로 자란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무의식적으로 100 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산다고 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쓰는 에너지의 80 프로만 써도 남들보다 잘 할 거다,라고 말해주셨을 때는 눈물이 왈칵 났다.

그래도 아마 죽음 가까이에서나 변할 수 있으려나. 비겁하다. 

 

 

3그램초반에 보면, 배가 나온다고 병원엘 가도 되나 하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에 병원을 거치고 거쳐 암 진단을 받게 되는데, 작가가 경험했던 증상들을 보면 낯설 게 별로 없다. 나도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고, 나이가 드니 배가 나오는 건가 싶게 뱃살도 생겼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하는 일들은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의 일들이다. 특히 비혼의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산부인과의 문턱은 높고 어색하다. 아마도 기혼 여성들도 산부인과 진료 의자에 눕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 그렇게 병을 키우고 의외로 난소암이나 자궁의 질환들을 뒤늦게 진단받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올해 건강검진에는 꼭 산부인과 검진을 포함해서 받아야겠다. 이렇게 악착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니까?! 기승전-건강! 말해 무엇하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