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OOOKS

[149] 가끔은 영원을 묻고 : 요조의 영월 여행 에세이

by 신난생강 2023. 1. 26.
반응형

요조 영월 한 달 살기 에세이를 무료배포 하고 있어 공유하니 신청해 보라는 친구의 다정한 메시지에 별다른 정보 없이 집 주소를 넣었다. 요조니까.
잊고 지내다가 그 친구를 만나던 날 우편함에 꽂혀 있던 영월군에서 온 봉투엔 사진기를 든 단정한 뒷모습이 담긴 책 한 권이 있었다. 설을 보내고서야 책장을 넘겼다. 영월의 가을을 담은 사진이 많고 소박하고 재치 넘치는 요조의 글이 36편 담겨 있다.

경상도 사람인 나에게 영월이란 지명은 낯선 곳이다. 강원도를 몇 번 다녀왔지만 남쪽으로부터는 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7번 국도가 최선이기 때문에 바닷가 지역들만 익숙할 뿐이다. 영월이 어디인가 지도를 찾아보니 평창과 정선 아래 길게 누워 있는 꽤 큰 지역이었다. 영월은 강원도이니 추울 거라고 생각하고 두꺼운 옷을 잔뜩 챙긴 서울 사람 요조가 영월이 따뜻해서 놀란 이야기가 있는데 서울 사람에게 강원도는 가까운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던 경상도 사람은 강원도가 넓다는 말을 새삼 새겨듣는다. 영월의 왼쪽 끝엔 치악산 국립공원이 있고 오른쪽 끝엔 태백산 국립공원이 있는데 산이 많은 곳이겠구나 짐작하던 때에 갑자기 엄마랑 봉봉이를 타고 평창과 정선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이 지역을 지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은 꼬불꼬불 이어지던 산골 마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길을 잘못 들어서 태백을 지나 엄청난 산골마을들을 드라이브했었는데 영월 어디쯤도 조금 지나지 않았으려나.

요조의 한 달 살기 집은 <내 마음의 외갓집>이란 곳으로 과거에 <인간극장>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살고 있었다. 여러 채의 공간 중 한편에 요조가 자리를 잡았고 낯선 영월을 경험하고 이야기를 해준다. 여행이랄까, 휴식이면서도 일인 채로 산골 생활은 시작된다.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많은 친구들이 내게 여행기를 써서 책으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지만 글을 쓰는 데는 소질이 없어서 선뜻 그러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엔 이미 여행하는 동안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온갖 아이디어들이 파티장의 풍선처럼 떠 있다. 이 시점에 요조의 여행기를 읽고 있으니 “나 요조의 글을 좋아했었지” 하는 그리운 마음 같은 게 생겨나 요조의 다른 책을 들춰보게 되었는데 언젠가 글을 쓴다면 나도 이렇게 마음 몽글거리는 것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몇 번의 심리테스트 같은 것들을 해보았는데 나는 감성 보다 이성 쪽이 더 강한 성향으로 나와서 몽글거리는 감성이 내게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변명의 여지가 생겼다. 난 항상 내가 감성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란 말이지. 하여튼 그렇다.

요조의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이미 익숙한 ‘종수’를 비롯해서 새로운 이름들을 또 여럿 마주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
내게 부족한 부분.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채워오고 싶다. 잃어버린 휴머니티. 그것 없이 예술 근처에 갈 수 있을 리 없다.

가진 책도 다 처분을 해야 할 처지에 또 책을 들이고 말았지만 오랜만에 책을 직접 넘기며 책의 물성을 느끼고 있으니 행복해져서 자꾸 들춰본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이야기에 고무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해 보고 싶은 것들,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을 본다. 나의 긴 여정은 한 점에 멈춰있진 않을 거라 생각보다 바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을 붙잡고 어떤 것을 나중으로 미룰지 선택하고 천천히, 더 천천히 삶의 속도를 늦추는 훈련을 하고 싶다. 서로 미루며 여행 준비가 더딘 탓에 각기 다른 불안을 안은 우리는 간밤엔 긴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말하지 않아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함께 찾아냈다. 우리는 의외로 대화가 부족했다. 부지런히 다시 해보자고 다짐했는데, 늦게 잠들어서 늦게 일어났다. 반달씨는 아직도 잔다. ‘천천히’와 ‘부지런히’가 마구 섞여 이미 갈팡질팡한다.  
우리, 잘 되겠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