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김영하
통영 여행 중에 욕지도에 있는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으니까 11월 초부터 이 책을 읽었다. 결국 도서관에서 다 읽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와 울산도서관 전자책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냈고 마저 읽으려고 했지만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여행의 이유」는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을텐데 왜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았던 것인가 생각해보았지만 이유를 찾아내진 못했다. 그냥 지금이 이 책을 읽을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하며 욕지도 도서관에서의 나른한 오후를 떠올려본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대출하려고 보니 책이 이미 대출 중이었다. 그런데 큰글자도서가 눈에 띄었다. 난 종종 큰글자도서 코너를 흐뭇하게 들여다보곤 하는데 거기서 이 책을 발견했고 이게 웬 떡인가 하고 덥석 집어왔다. 사실 필사를 하고 싶어 종이책을 빌리러 간 거였기 때문에 큰 글씨로 된 책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몇 장을 필사하고 대출 기간이 지났다. 다시 책을 빌려와 놓고는 펴보지도 않고 반납일이 돌아왔다. 책을 읽으려고 펼치면 몇 줄을 읽다가 큰 글자들 사이로 딴생각이 차 버렸다. 큰글자도서는 내게 집중력의 문제를 일으켰다. 아직 이렇게 큰 도서를 읽을 시기가 아닌가 보다. 이것도 타이밍의 문제인 거지.
여행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과 섞여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여행은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 오롯이 현재를 살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여행은 환대와 신뢰의 순환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원점으로 무사히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떠나려는 것일까. 결국 인간은 지구라는 장소에서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인 것인데, 흔한 이유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걸까, 나 자신을 찾고 싶은 걸까. 반달씨,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것인가요?
반달씨는 여행의 이유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과연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한 거다. 나는 온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이라 흥미롭고 재미있고 맛있고 신나는 조카 솔스타를 보다가 부러워 이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익숙하고 아는 것들이라 시간이 빨리 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면 과연 시간이 천천히 갈까 궁금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호기심이 모여 곧 우리의 여행도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짧은 소설을 다시 읽으며 새삼 놀란 것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어떻게 이런 상태를 극복하게 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충성스런 하인과도 작별하여 고립된다. 그런데 그는 장터에서 우연히 낡은 장화를 하나 사게 된다. 곧 이 장화는 주인공을 세계 어디든 순식간에 이동시켜주는 마법의 장화임이 밝혀진다. 그는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겠다는 소망을 포기하고 세계를 떠돌며 산다. 어떻게든 그림자를 되찾아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는 결말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는 그림자에 연연하지 않고 여행자/탐험가/방랑자로 살아가면서 만족하고 있다.
나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대한 글이 좋아 천천히 필사를 했다. 그림자를 팔고 후회를 했지만 마법 장화를 신고 세계를 여행하며 살게 된 사나이. 이 이야기를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야 한다면 그림자처럼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들이 중요하지만, 그림자를 이미 잃었다면 굳이 영혼까지 팔면서까지 그걸 되찾을 필요는 없다, 그냥 방랑자로 살면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으면 제 코에 맞춰 갖다 끼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렇게 내 편에 가져다 놨다. 나도 마법 장화 있었으면, 악마가 내 그림자도 사갔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 달간의 길고 긴 독서의 시간을 끝내고 후련하게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왔다. 여행의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떠날 것이다. 실컷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여행의 이유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또 다른 여행을 감행할 수 있다. 여행의 이유를 고민하는 건, 결국 다음 여행지 앞에 나를 세우기 위한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여행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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