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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사도는 내 기억의 서랍 속에 담겨 있었다.
그 와인은 잊고 있던 작은, 그러나 둘도 없는 감동을 내게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어느 날의 광경이었을까. 여름을 향해 가는 계절. 나는 친한 동무들과 풀숲을 뛰어다니며 날이 저물도록 신나게 놀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하고 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의 기척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게 됐고, 공터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터에는 지금은 볼 수 없게 된 하얀 민들레가 잡초 속에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펼쳐지기 시작한 저녁 노을이 그 꽃들을 붉게 물들여간다.
어디선가 저녁밥을 짓는 맛있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뭔가를 굽고 있나? 공터의 풀 냄새와 뒤섞여 그것들은 고상한 허브와 스파이스 향이 되어 코를 간질인다. 나는 땅거미 지는 공터에 홀로 남겨진 불안감에, 단란한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냄새를 담은 바람에 걷잡을 수 없이 집이 그리워진다.
가자, 그만 집에 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황혼이 밀려드는 주택가는 어느집이나 똑같아 보인다. 걸어도 걸어도 집은 달아나듯 멀어진다. 길을 잃고 배는 고파 어쩔 줄 몰라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 어깨에 따듯한 손이 얹혀진다. 꼬마야...
따뜻하고 커다란 손의 주인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불안감을 떨쳐 주기 위해 과자를 주었다. 그 작은 한 덩어리를 나는 입에 넣었다. 마음이 푹 놓이는 듯한 달콤함.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향긋함. 그 따스함은 한순간의 추억으로 어린 내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겨졌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집 앞에 서 있었다. 살며시 열린 창문으로 단란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의 온기를 찾아 나는 무거운 나무 문을 열었다.
V.V.에 대해 배우게 된다. 비에이유 비뉴. VIEILLES VIGNES. 오래된 포도나무라는 뜻.
"세월을 보내지 않은 어린 나무는 가늘고 강도가 부족하죠."
보통은 수령이 25년은 지나야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신의 물방울」에선 100년이 된 고목에서 딴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만나게 된다.
도멘 페고 '퀴베다 카포' 2000년.
제3 사도를 찾는 여정은 와인을 마시기 거부하는 일류 여배우의 와인을 찾기, 일본의 와인 산지에서 할아버지가 자르지 말라고 부탁한 나무에서 딴 포도로 만든 V.V. 와인을 만나기 등을 거쳐 찾은 와인으로 대결이 펼쳐지지만 시즈쿠와 잇세 모두 실패한다. 3일의 시간을 더 얻어 다시 제3 사도 찾기에 나서는데, 잇세는 놀이공원에서, 시즈쿠는 유명한 작가의 마지막 와인을 찾는 것에서 길을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둘이 찾은 와인은 도멘 페고 '퀴베다 카포' 2000년.
하나의 와인의 맛을 저렇게 스토리로 풀어낸다는 것도 흥미롭고 반대로 그 스토리를 통해 와인을 찾아가는 것도 신기했다. 실제로 가능한 것일지도 궁금하다. 여전히 나는 와인을 마시지 않지만 와인 셀러를 지나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와인의 에티켓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지만, 호기심에 들여다 보곤 한다.
그리고 12권에선 반갑게도 이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에서도 와인에 대한 관심이 늘어 한국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시즈쿠는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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