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사람들은 자기 몸이 지속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사랑도 당연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지속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일단 그런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그건 우리 삶에 추가된 또 하나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그런 지속적인 만남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를 지탱해 줄 토대는 늘 하나뿐이다.
주인공 A는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
지금은 이 아이디어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있었으니까. 차이가 있다면 A는 16세이고 같은 또래의 몸에서만 깨어난다는 사실이 이 혼란스러운 생활의 작은 마지노선을 형성하고 있다.
매일 다른 사람이 되는 운명을 타고난 A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애넌을 만나기 위해 하루 빌린 인물들이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그 위험한 집착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애넌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어 A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사랑은 갑작스러운 사고 같은 것이고 의지로 제어되는 부분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드러내고 이해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꾸 리애넌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오늘은 A가 어떤 인물이 되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공포감이 느껴지는 거다. 그렇지만 인간으로서 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당연히 있을 것이고 그게 16세라면... 나는 그 열정과 무력감에 공감해야 하는 거겠지.
「에브리데이」가 좋았던 건 '사랑'이라는 집착의 감정에만 이야기가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A는 단 하루 남의 몸을 빌려 살아가기 때문에 되도록 본래 인물의 삶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깨어난 몸이 자살을 하려고 하거나 마약을 한다면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하고, 하루살이의 삶을 끝낼 수 있다는 유혹을 이겨내는 모습 같은 것들이 A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내가 A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매일 여행하는 A의 삶이 좋았다. 마약에 쩔어 있거나 매일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의 벗어날 수 없는 삶보다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A의 삶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삶은 문제 투성이인데 평생 함께 갈 내 몸이 없다는 것은 대신 내일이면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왜 나쁘지?
A가 지금처럼 끝까지 '옳음'을 추구하며 산다면 누구보다 좋은 삶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부럽기도 하다. 지금의 내 삶과 바꾸겠냐고 하면 선뜻 바꿀 수는 없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삶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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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변하는 나, 그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ㅣ인터파크 책매거진 북DB (bookdb.co.kr)
소설이 리애넌과 A의 로맨스만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현대 미국 사회를 사는 수많은 16살 아이들의 삶 자체이다. A가 들어가는 육체의 주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소녀, 고도비만인 소년, 애인과 1주년을 맞은 게이 소년, 영어를 모르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불법 이민자 소녀, 마약중독자 소년, 외모에 집착하는 흑인 소녀, 엄격한 부모 밑에서 홈스쿨링을 받는 소년, 여자 몸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회적 성은 남성인 사람…. 리바이선은 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열린 마음으로 기술하며 엄청난 감정이입 능력을 과시한다. 미국 LGBT(성적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애정은 덤이다.
「에브리데이」를 읽게 된 건 김초엽 작가님의 「책과 우연들」을 읽다가 장르소설에 대해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속에 더 넓은 세계들을 알아보고 싶었다. 무엇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까 하던 중에 책에 소개된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이라는 칼럼을 따라 읽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에 더해 내가 놓친 이야기들을 전문가의 관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에브리데이」에서 나는 '이메일'을 발견했다. A는 매일 다른 이의 몸을 빌려 산다. 그러니까 A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A가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이 이메일 계정이었다. A는 이메일을 통해 기억들을 기록하는데 이게 기록 집착인에게 아주 그럴싸하게 보였다. 이메일이 갑자기 아주 비밀스럽고 초월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외국에 있던 내게 엄마는 다정한 이메일을 많이 보내주었다. 어느 시절 외국에 있던 남자친구와도 이메일로 온갖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뉴스레터와 광고 메일만 잔뜩 쌓여 방치된 신세이지만 내게도 이메일이 소중한 공간이었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A에게 이 사이버 공간은 얼마나 소중했을까. 어떻게든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결국 기록이니 즐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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