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캠핑 아지트, 서승범
아주 어렸을 때, 가족들이 함께 캠핑을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계곡이기도 했고, 강가이기도 했다. 엄마 말로는 우리가 한두 살 아기였을 때, 그 당시엔 차도 없었는데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텐트를 짊어지고 엄마와 아빠는 캠핑을 다녔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고생스러운데 여행은 추억이 되었겠지. 그렇지만 이건 나의 캠핑이라기보다 부모님의 캠핑이었다.
나의 캠핑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시작되었다.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일이 잘 구해지지 않았다. 왕복 비행기표와 200달러도 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호주에 갔다. 돈이 떨어질 때까지 호주에 있다가 오자고 생각했지만 호기롭기엔 너무 돈이 없었다. 며칠을 캐러밴에서 생활하며 45도가 넘는 뜨거운 포도밭에서 일을 했다. 아침 일찍 포도밭에 도착해서 한 고랑을 배정받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허리 높이 정도 자란 포도나무들이 나를 맞았다. 이틀 째 밤에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말았다. 이 며칠 간의 캐러밴 생활은 캠핑으로 치지 않겠다.
그리고 체리농장으로 체리를 따러 가는 가족의 베이비시터 일을 하게 됐다. 면접을 보는데 본인들은 캐러밴에서 생활할 건데 너는 텐트에서 생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텐...트...???
OK. 그래도 바람 한점 없는 땡볕에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일당도 더 많고, 그리고 수중에 남은 돈도 얼마 없었고.
작은 캠핑장이었다. 캐러밴들이 있었고, 나 혼자 텐트에서 지냈다. 내가 보는 어린이는 돌이 갓 지난 남자 아이였는데 씩씩하고 보채지도 않고 놔두면 혼자서도 잘 놀았다. 때가 되면 먹을 것을 먹이고, 기저귀를 확인하고 갈아줬다. 캠핑장 근처를 함께 산책하고, 흙놀이를 하고, 붕붕카를 태워주고, 밥 먹여 재우고 나면 나는 잠깐 자유를 얻었다. 한낮의 캠핑장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저녁이 되면 부부는 내가 먹을 체리를 잔뜩 따서 돌아왔다. 밤엔 캠핑장 가운데 모닥불로 사람들이 모였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수다도 떨며 하루치 노동의 피곤을 날리는 시간인 듯했다. 낯선 동양인 여자 아이에게 대부분 친절했다. 한여름이었지만 밤엔 텐트 안으로 한기가 올라왔고, 혹시나 비가 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잠이 들었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냈다. 당시엔 막막하고 서럽기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예쁘게 포장되었다.
그리고 반달씨를 만난 이후 다시 캠핑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주 작은 텐트와 타프가 있고, 캠핑 의자 두 개가 있고, 미니 버너 하나와 코펠 한 세트가 있다. 그것뿐이다. 한동안 내가 고기를 아예 먹지 않았기 때문에 캠핑을 가서 밥은 식당에서 사 먹었다. 버너와 코펠은 커피를 만들어 먹는 용도이다. 그리고 작년엔 던지면 펴지는 원터치 텐트도 하나 샀다. 우리는 소박한 캠퍼이고 럭셔리 난민촌에 돈 내고 입성하기엔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 너무 적었다. 코로나 이후 캠핑장이 많이 생겼지만, 비용이 좀 너무하게 올랐다.
그래서 이 책에는 뭔가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캠핑 아지트가 있지 않을까, 혹은 좋은 캠핑지를 찾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해서 읽기 시작했다. 노지나 마을에서 텐트를 치기 위해서 미리 허락을 구하고 텐트를 치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전국 캠핑장은 고캠핑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사실 이런 것보다 캠핑을 하는 마인드를, 여러 가지 캠핑 이야기를 간접 경험하는 것이 좋았다.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곰을 만날까 두려워 하며 하던 대자연 속 캠핑이나 햇빛 쨍쨍 오키나와 바다는 나도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단풍의 속도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만나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자꾸 많아진다.
설악산 대청봉을 물들인 단풍이 한라산에 이르는 데 달포 정도 걸린다. 봉우리에서 봉우리로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지만 사려니숲길 같은 산 언저리의 곳곳까지 따지면 대략 한 달 넘는다. 한 달이라고 치자. 강원도 고성에서 제주 서귀포까지 대략 600km라고 치자. 단풍은 하루 20km씩 남하하는 셈이다. 시속으로 치면 1km/h이다. 살피고 다가가고 들여다보고 때로 물끄러미 쳐다보는 여행에 적당한 속도다.
나의 오랜 바람은 이를테면 이런 거다. 설악산 단풍 소식이 들리면 강원도로 튄다. 천불동과 주전골의 단풍을 보고 며칠 동안 설악에 푹 빠져 있다가 방태산과 오대산, 가리왕산 거쳐 삼척의 두타산 무릉계곡에 이른다. 다시 태백과 소백을 거쳐 월악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면 지리산에 다다르겠지. 아, 중간에 '춘마곡 추갑사'라는 갑사도 빼놓을 수 없겠다. 남도의 고찰 몇 곳에서 숨을 돌렸다가 제주로 옮겨간다. 단풍의 속도로. 한라산과 주변의 크고 작은 오름들, 사려니숲길까지 걷고 나면 아마도 온몸에 단풍물이 들었을 것이다.
ACTION PLAN 1. 오키나와 캠핑 여행 가기
ACTION PLAN 2. 단풍의 속도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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