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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000] 책방으로 가다

by 신난생강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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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으로 가다 전지영

 

책 읽기도 슬럼프가 있다. 지금까지 내 책 읽기의 슬럼프는 '사는 게 아주 팍팍하다고 느꼈을 때, 소설이 잘 읽히지 않을 때'로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의외로 아주 평온하고 편안한 시절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 불청객은 예고 없이 찾아와 아주 오래 머물렀는데, 무기력증과 함께 찾아와 쫓아내 버리고 싶은 의욕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차지해버렸다. 간혹 책을 읽기도 했지만 집중해서 한 페이지를 읽는 것이 힘들었다. 머릿속은 온통 딴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눈은 또 유튜브를 보는 중이었다. 그렇다, 이번 슬럼프의 주적은 유튜브였다. 

 

나는 한번도 유튜브 인간인 적이 없었기에 이번 슬럼프는 아주 당혹스러웠다. 책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뒤적여 바로 찾아서 금방 읽을 수 있고, 네이버나 구글 같은 검색엔진도 정확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면이 있는데 반해 유튜브 같은 영상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영상을 통째로 봐야 하는 단점이 있다. 나는 유튜브로 정보를 얻는 것에 아주 서툴고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유튜브는 음악 플레이하는 정도로 사용을 했었다. 물론 이마저도 광고 때문에 좋아하진 않았다. 그런데 퇴사 후 집에 혼자 있으니 배경음악을 깔고 싶어졌다. 클래식 FM을 애용했지만, 비 오는 날엔 재즈도 듣고 싶고, 비긴어게인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의 플레이리스트를 우연히 듣고 나서 새로운 BGM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그렇게 시작된 유튜브 프리미엄의 늪에 푹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올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유튜브 프리미엄'을 외치겠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광고 없는 유튜브 환경은 너무나 쾌적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하루종일 보고 또 보고 온갖 것들을 다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첨엔 유튜브로도 책 관련 콘텐츠를 보았지만, 이젠 책 따위 글자 따위 읽고 싶지 않다.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책을 읽다가도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이 배경이 되는 곳은 어떤 곳일까, 이 내용은 도대체 뭘까, 이건 어떤 음식일까 궁금해진 것들은 지체 없이 유튜브에 검색했고 그러면 두세 시간은 순삭. 이젠 '책'이라는 중간 매체가 없어도 유튜브 알고리즘만으로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 호기심까지 낚아 올릴 수 있다. 하아. 

 

하아. 

책을 읽고 싶은데... 책을 읽을 수가 없네... 글자를 읽는데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싶은 순간이 들이닥치고 말았다. 뭔 상관인가 하며 열심히 유튜브만 보기를 두 세달 하면서도 부지런히 도서관을 다녔다.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짊어지고 와서 가방에서 꺼내보지도 않고 다시 반납한 적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참 성실하게 도서관엘 갔다. 180 페이지쯤 되는 얇고 가벼운 이 책을 만난 건 몇 주 전이다. 우연히 신간 코너에서 집어왔는데 책에 관한 책이다. 10권의 책을 읽고 쓴 작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인데 읽다 보니 참 좋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앉은자리에서 후루룩 읽어버렸을 이 책을 읽는 데 3주가 걸렸다. 한 번 반납 시기가 다가와 반납을 했다가 마저 읽고 싶어 다시 빌려왔다. 너무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꾹꾹 누르고, 다시 책을 읽어보려는 내 노력에 아주 부합하는 제목 아닌가. 「책방으로 가다」

 

1. 제발 조용히 좀 해요 / 레이먼드 카버

2. 어둠의 왼손 / 어슐러 K. 르 귄

3. 일리아스 / 호메로스

4. 그로칼뱅 / 로맹 가리

5. 소송 / 프란츠 카프카

6.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7.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8. 안티고네 / 소포클레스

9. 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튼

10. 디어 라이프 / 앨리스 먼로 

 

나는 아주 게으르게 책을 읽었구나 반성을 했다. 읽은 책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책만 읽었기 때문이었다. 각 책에 관한 글에는 제목이 따로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제목 아래에 저자의 에피소드가 들어있고, 작가에 대한 내용이 있고, 책에 대한 글이 있었다. 이렇게 읽은 책을 정리한다면 그 책들의 일부가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리뷰들은 이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정리하지 않았지? 아는 것과 행동까지의 거리는 이토록 멀고, 반성했지만 아마 이 글도 그냥 그런 주절거림으로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책을 한 권 읽었고, 다시 블로그에 하나를 정리했다는 것이 발전이지 않은가.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로 한 나는 오늘도 마냥 즐겁다. 

 

 

 

 

이 책을 쓴 전지영 작가님은 바다 마을 요가 선생님이다. 정보가 많이 없었는데,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라는 책을 비롯해서 몇 권을 책을 쓴 에세이 작가라고 한다. '나'에게 좋은 것을 찾아가는 여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반짝임이 있다. '나'에게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의 생각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스민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 내가 읽은 건 뭐였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위축되지 않았다. 그럼 나도 다시 한번 읽어볼까 하는 동그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순한 맛의 글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소개받은 책을 한 권씩 아주 천천히 읽어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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