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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00]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by 신난생강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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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전지영

 

「책방으로 가다」를 읽은 뒤 작가의 다른 책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를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해서 그대로 이어서 읽었다. 여전히 책 읽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짧은 호흡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책을 조금 더 읽기로 했다.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마흔둘,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3년간의 소송 끝에 이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의욕이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책의 시작은 저자의 힘들었던 과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전신거울 앞에서 마주한 자신을 보며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래서 40대의 시간을 몸을 위해 투자했다. 지인의 권유로 요가원을 찾았을 때 만난 요가 선생님은 요가 수업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1:1 개인 지도를 하는 회복 요가 전문 강사였고 주 2회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체수업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요가를 6개월 정도 꾸준히 배운 적이 있었으나 크게 건강해진다고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몸에 통증만 심해졌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렇게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요가 지도자 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나이대의 강사가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주민센터에서 요가를 배운 적이 있는데 당시에 요가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하셨다. 40대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흔히 생각하는 딱 달라붙는 요가복이 아니라 펑퍼짐한 수련복을 입고 수업을 하셨다. 여전히 하지 못하는 동작이 많아 계속 수련하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어린 내가 척척 해내는 동작도 못하실 때가 있어 갸우뚱한 적이 있었다. 말랑하던 몸은 어느새 딱딱해졌고, 요새는 요가 동작 하나를 해보려면 곡소리부터 나는 나이가 되었다. 분명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은 채 40년을 살았다면 나랑 비슷한 몸 상태였을 것 같은데 그런 몸으로 요가 지도자 과정에 도전하다니 새삼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40살이 되고 어린 선생님에게 운동을 배워보니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뭔지 알 것 같다. 20대의 선생님은 40대 나이의 몸을 살아본 적이 없다. 서서히 겪은 몸의 변화는 20대의 몸과 너무나 다르다. 국민체조가 운동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게 어른이라는 증거라고 하지 않던가. 이게 운동인가 싶던 그것들에 아주 큰 노력이 든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변화를 이미 겪어 본 다양한 연령대의 운동 선생님들이 있다면 운동을 하는데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것 같다. 준비운동만 하고도 체력이 동나버리는 한 사람으로서, 나도 60살쯤 되면 폴댄스 강사가 되어 나중에 노인대학에서 폴댄스를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망상에 잠시 빠져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에 작은 씨앗을 품고 태어난다고 한다. 자신의 씨앗이 어떤 나무로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능성이라는 작은 씨앗이 울창하게 자라 꽃을 피우는 시기를 맞이하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씨앗이 떡갈나무인지 벚나무인지 알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중략)
지금에 이르러서야 내가 씨앗이 아니라 씨앗을 수려한 나무로 성장시키는 정원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도 여러 직장을 떠돌았고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뿌리내리지 못한 나의 씨앗은 항상 불안했다. 그런데 공무원의 싹마저 잘라버린 나는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없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아마도 앞으로 무엇이 되겠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린 나는 내가 어떤 대단한 씨앗인지 확인을 해야 했다면, 지금은 내가 열매 맺을 씨앗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더 이상 싹을 틔우는 것에 대한 불안이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도 된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어도 된다.   

 

바닷가 마을에서 요가를 가르치면서 가끔 왜 하필 요가를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을 하게 됐을까 스스로 의아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운동과 글쓰기를 잘했던 기억은 없다. 소질이 있는 분야는 그림이었다. 그림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나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듣곤 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결과물을 만들어 낼 만큼 대단한 재능은 아니었지만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 잘하는 일은 중요한 키워드였다.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무언가를 더 잘해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요가와 글쓰기를 선택했다.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길은 정해졌고 나는 걸어가는 것이 좋다. 여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잘하고 싶은 욕심이 그득하다. 그날 배운 폴댄스 콤보를 성공하지 못하면 더 이상 폴에 오를 힘이 없는 게 너무 분하다. 무엇을 시작하면 그걸 잘 해내고 말아야 한다. 잘하고픈 마음에 생각만 하고 있는 유튜브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괴로워하다니. 아직 연륜이 부족한 것, 더 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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