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맞는 직장 동료들끼리 '우리 동네 모임'을 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네 명의 멤버가 한 달에 한 번 퇴근 후 만나서 저녁 먹고 차 마시며 수다 떠는 모임이었다. 그 자체로도 좋았는데, 지난달에 미니멀 라이프에 꽂힌 나의 제안으로 집에 안 읽고 있는 책을 한 권씩 가져와서 나눠 읽어보기로 했다. 책을 공개하지 않고, 뽑기를 해서 내가 뽑은 사람이 가져온 책을 가져가는 건데, 거기서 내가 뽑은 책이다. 책은 참 예쁜데, 생각지 못하고 쓰던 말, 행동들이 차별이었다는 걸 마주하는 게 어려웠다.
대학에서 수어 동아리 활동을 했고, 사회복지학과 법학을 전공하며 인권을 공부했고, 장애인의 권리와 법에 관한 수업을 들었고,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이 책의 작가님도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무심코 사용했던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했고 지적을 받았음에도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고민해야 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감'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표현은 명백히 차별이 담긴 혐오 표현이라는 것에 작가님도, 책을 읽는 나도 놀랐다.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의는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은 아직 충분히 정의롭지 않고, 부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 걸음 뒤에서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래야 내가 처한 상황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보고 더 크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예전에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좋은 독후감을 쓰기 위한 방법으로도 배웠던 것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글쓰기에서도 필살기가 되는 것이었다.
차별금지법
2020년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코로나19 확진자라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등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이다. 누구든지 성별, 장애, 인종, 나이,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 제공, 행정 서비스 등 4가지 공적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규정한다....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이상민 의원이 인권위가 제시한 법안을 토대로 평등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경향신문 20.8.18. "평등할겨, 말겨?" 평등버스에 오르다; 노도현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221429011&code=940100#csidx804a77aec5f0c4bba3236eed1b9f447
인권위가 낸 평등법 시안 주요 내용을 보면, 차별 개념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조장 광고 등 5개로 범주화했으며, 성별 등 21개를 차별 사유로 뒀다.
차별 사유는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등이다.
차별금지 사유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 건강상태, 직업, 문화, 언어, 국적, 경제적 상황, 유전정보 등 차별이 발견될 때마다 더 추가될 수 있다. 그러니 어차피 '모든' 차별을 금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법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논의하였듯이 보편성은 차별을 잘 보이지 않게 만들어 은폐시키기도 한다. 보편적으로 모든 차별을 금지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차별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보이게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 사유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당연하고 멀쩡해 보이는 법안을 #나쁜 차별금지법이라며 피켓 시위를 하며 거센 반대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슨 이유에서 일까 궁금해져서 카페, 블로그 글을 몇 개 눌러보니, 전부 내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옹호하도록 가르칠 수 없다, 동성애는 질병이다, 금연을 강제하듯 동성애도 막아야 한다, 외국인들이 이 법을 악용해 고용주에게 해가 될 수 있다 등의 천편일률적이고 배타적인 글이 많았다. 내가 이해한 법은 무엇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있으면 그 자체로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아닌 '저들'이 싫다, 차별금지법이 싫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이라 생각된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No one Left Behind' 라는 차별금지법의 원칙이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지길 바란다.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고 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에 웃어버리는 것조차 차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차별을 직간접적으로 하면서도 모르고 살았을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훨씬 더 예민해져야 하고, 무엇이 차별인지 구체적으로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런 걸 보면 트위터는 참 예민한 매체이다. 언제나 날을 세우고, 정색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다른 SNS와 차별된다고나 할까. 그런 점을 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많이 배웠다.
차별을 인지했을 때, 정색하며 목소리 내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웃지 말기. 그리고 혐오표현이 내 입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천천히 말하기. 평등법 지지하기. 연대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함께 목소리를 내기.
나의 작은 세계에서 조그만한 도전들을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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