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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거 얼만가요?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 존엄을 지키는 삶과 죽음

by 신난생강 2020.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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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진을 쉽게 찍고, 편집하고, 전시하는 시대가 된 지금 전문가가 찍은 사진집은 얼마나 특별해야 팔릴까? 사진작가 쥐빌레 펜트는 게르트너 부부와 함께 여행을 떠나 그들의 일상을 찍었다. 유럽에서 노부부의 캐러반 여행은 아주 특별한 축에 들지는 않는다. 이 부부도 여러번 캐러반을 타고 여행을 다녔었다. 이들에게 수많은 여행 중 하나였던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매번, 언제나 특별하기 마련이다. 

작가는 2008년 로타어와 엘케 게르트너 부부를 알게 되었는데, 당시 엘케는 2년째 치매를 앓고 있었다. 증세는 빠르게 진행이 되어 말하는 능력을 잃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했으며 특정 행동을 반복하기도 했고,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기도 했고, 갑자기 무표정한 채로 있기도 했다. 로타어는 이런 아내를 돌보면서도 일상적인 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아내의 병을 흔쾌히 보여주었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아내가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라는 것을 굳이 알지 않아도 사진들은 말을 한다. 애틋함이 묻어나는 사진이 아니라 흔한 하루처럼 담백한 일상을 담고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진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속 부인의 모습은 온화하다. 질 좋은 니트로 짠 옷으로 우아하게 잘 갖춰 입었고, 악세서리를 챙겼고 손톱 관리까지 잘 되어 있어 외모를 가꾸는 것에 신경을 쓰는 노부인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표정은 무표정이거나 어색한 모습으로 웃거나 찡그리고 있다. 반면 남편은 캐주얼한 차림으로 아픈 아내를 입히고 돌본다. 아마도 병을 앓기 전, 부인의 스타일대로 챙겨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본인이 아는 아내의 모습이니까. 중간에 끼어 있는 풍경 사진은 먹구름이 낀 풍경이거나 어두운 안개, 빈틈없는 나무숲으로 표현되어 부부를 둘러싼 긴장감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치매 어르신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이 크게 보이지 않아 사진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살아온 내 집에서 일상을 평소처럼 지내는 데서 오는 안정감이 아닌가 싶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돌봄'에 대한 이슈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는데, 준비없는 죽음, 사랑하는 가족과 내 집에서 함께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낯선 병원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노년의 가난과 함께 큰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노년이 행복하지 않은 비극의 원인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가장 큰 좌절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술만 있고 사람은 없다는 깨달음은 우리 모두가 병 앞에, 죽음 앞에서 부딪히게 될 것이므로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게르트너 부부나 영화 <노트북>의 엘리와 노아처럼 끝까지 '사랑'을 이야기하고 존엄을 지키는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
국내도서
저자 : 지뷜레 펜트
출판 : (주)출판사 클 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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