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는 소개글을 본 적이 있다. 읽어보니 책을 적당히 좋아해서는 될 게 아니고 분야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아주 많이 읽고, 그만큼 좋아해야 할 것 같았다. 삼십오 년 동안 압축기로 폐지를 누르며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은 주인공 한탸의 독서의 시점을 따라가기에 나의 독서력은 너무나 가벼운 것이다. 무게가 더 필요하다.
이 묵직한 폐지 압충공의 짧은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성스럽게 묘사된 게으른 폐지 압축 공정에 동참하게 된다. 이토록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다니, 퇴직하고도 본인이 사용하던 압축기를 집으로 가져가서 본인만의 압축 공정으로 예술을 하겠다고 결심한 분이다. 쏟아지는 폐지 더미는 한탸가 일하는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로 쏟아진다. 낡은 폐지 압축기 속으로 온갖 종이들을 넣고 초록색 버튼을 눌러 압축된 폐지 더미를 만드는 게 일이다. 포대, 유효기간이 지난 팸플릿, 아이스바 껍질, 정육점에서 온 핏물 밴 축축한 폐지도 있지만, 신문지 뭉치나 잡지, 희귀한 도서, 심지어 왕실의 도서관에서 온 멋진 책들도 있다.
그런데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공장 지대를 흐르는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달까.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글의 향기를 들이마쉰 뒤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 (...) 뒤이어 나를 위한 미사인 독서 의식을 행하고, 내가 만든 꾸러미 안에 그렇게 읽은 책을 올려놓는다. 각각의 꾸러미를 아름답게 꾸며 하나하나에 개성을 부여하고 내 서명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꾸러미들이 저마다 뚜렷이 구분되게 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 꾸러미마다 한복판에 「파우스트」나 「돈 카를로스」 같은 책이 활짝 펼쳐진 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다.(...) 어느 꾸러미가 괴테나 실러, 횔덜린, 니체의 무덤으로 쓰이는지 아는 사람도 나뿐이다. 나 홀로 예술가요 관객임을 자처하다 결국 녹초가 되어버린다.
본인만의 의식을 치르고, 꾸러미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에 맞는 책을 펼쳐 폐지를 압축하니 늘 피로하고 일이 밀린다. 책 속의 말들이 형상화되어 보이기도 하고, 몽롱한 상태로 일을 하니 일이 능률이 오를 리 없다. 그렇지만 본인은 이 일이 지루하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이 대단한 의식과 망상들은 글로 읽으니 문학이지만, 결국 작업 소장의 화를 돋울 뿐이다.
그러다가 주인공 한탸는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부브니에 엄청난 크기의 수압 압축기 한 대가 본인의 압축기 스무 대 분량의 일을 해내고, 기계 한 대가 삼사백 킬로그램의 꾸러미를 만들어 회전식 기중기를 이용해 화물열차로 운반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가서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여 견학을 간다. 어마어마한 기계의 일처리는 물론이고 그 작업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낯선 복장으로 콜라와 우유를 들이키며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쉬는 시간엔 그리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본인의 좋은 시절과, 쓰레기 더미에 실수로 버려진 책들을 구해내는 기쁨도 끝이라는 걸 직감한다.
사르트르 양반과 카뮈 양반이, 특히 후자가 멋들어지게 글로 옮겨놓은 시시포스 콤플렉스는 지난 삼십오 년 동안 내 일상의 몫이었다. 그러나 부브니의 사회주의 노동단원들은 일이 밀리는 법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미소년들처럼 볕에 그을린 젊은 남녀들이 작업을 재개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도, 괴테도, 불멸의 고대 그리스도 모르는 그들은 헬라스에서 여름을 보내는 일에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나는 여자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좋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집시 여자는 밤이면 난로에 불을 붙이는 것에 만족했고 연을 날리던 날 사라졌다. 나치에 붙잡혀 어디선가 학살당했다. 그 집시 여자를 가엽게 여기며 전쟁이 끝나고 나치 문학과 팸플릿이 지하실로 쏟아지자 열성을 다해 파기하던 그 이야기가 좋았다. 똥 이야기로 시작해 똥 이야기로 끝난 듯한 수치스런 여자 이야기, 그러나 우스꽝스럽던 그 여자가 지난 시절 쌓아 올린 집과 마주하는 이야기도 좋다. 그게 비꼬기 위한 우화일지라도 사는 방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 내 삶이 책이나 읽으며 폐지를 압축하는 영감의 삶에 더 가깝지만, 삶을 다채롭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제나 동경한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오히려 그쪽이다. 갇힌 삶 속에서 아무리 책을 읽어봐야 시끄러운 고독이나 느끼는 비대한 자아를 가진 꼰대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뿐이다. 책 따위 모르더라도 즐겁게 사는 게 낫다.
저자 보후밀 후라발은 1914년 체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맥주 양조장에서 일했고, 김나지움 졸업 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 시를 쓰기도 했으나 대학이 독일군에게 점령되자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역부, 외판원, 재활용품 수거원, 극장 무대장치 담당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 뒤늦게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작가가 되었다. 1997년 프라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다가 5층 창문에서 떨어져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 체코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삶 또한 한탸와 주변 사람들의 삶만큼 '어떤 일, 어떤 삶을 꾸릴 것인가'하는 생각 거리를 던져 준다.
이 시대 체코의 역사와 책에 언급되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두루 안다면 더 값어치 있는 독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문학적인 상상력만으로 충분히 그 나름의 보석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운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책등을 만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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