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야만인들 Barbarians at the gate 브라이언 버로, 존 헬리어
어마어마한 책이었다. 3일을 꼬박 이 책을 읽는 데 썼다. 1,000쪽이나 되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낯선 이야기임에도 재미있어서 푹 빠져서 보냈다. 믿기 어렵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혹여나 책의 크기에 압도되어 영화로 보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을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유튜브에 영어로 제목을 검색하면 영화를 찾을 수 있는데, 한마디로 1시간 40분이 아까웠다. 아마 책을 읽지 않았다면 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것이므로 볼 가치가 전혀 없다. 양복입은 80년대 백인 아저씨들이 머리카락이 있거나 없거나로 구분될 뿐, 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군지도 모를 뿐더러, 책에서는 18장에 걸쳐 펼쳐지는 장대한 싸움을 이상한 파티 화장실에다 대충 버무려놨다.
「문 앞의 야만인들」은 1988년 RJR 나비스코의 LBO 과정을 월스트리트 기자 두 명이 함께 취재하여 만들어낸 책이다. 80년대는 금융시장에서 호황기였다고 하는데, 그 호황기의 끝자락에 이 이야기가 있고, 단 한 줄로 요약했던 위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싶다면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의 끝에는 나락이 있다. 이 말은 2008년에도 유효했고, 어쩌면 지금 다가오고 있는 어떤 나락에도 유효할지 모른다.
RJR 나비스코라는 회사는 당시 미국에서 19번째로 큰 회사였고, 윈스턴, 살렘, 카멜이라는 담배를 만들던 RJR(레이놀즈)이라는 담배회사와 오레오와 리츠를 만들던 나비스코 브랜즈의 기묘한 합병을 통해 만들어진 회사였다. 이 회사가 있기까지의 합병과 합병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우리는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이자 이 길고 긴 이야기에서 당당하게 '탐욕'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로스 존슨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지만 사실 로스 존슨은 처음에는 LBO를 반대했다.
LBO(Leveraged BuyOut)는 '차입매수'라고 해서 사들이려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빌린 자금을 이용해 해당 기업을 인수하는 M&A 기법이라고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의 돈을 이용해서 기업을 사고 기업의 돈으로 빌린 돈을 갚는다. 이 책에서 보면 투자은행에서 정크본드를 팔아 기업을 살 돈을 마련했고, 기업을 사고 나면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쪼개서 팔아 그 돈으로 빌린 돈을 갚는다. 이렇게 보면 또 익숙한 이야기다.
LBO의 기본 논리는 비교적 단순했으며 여기에 대해서는 세 사람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논리는 이렇다. KKR와 같은 투자 회사가 한 회사의 경영진과 손을 잡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주식을 공매해 마련한 자금으로 이 회사를 사들인다. 그리고 이때 발생한 부채는 이 회사의 운영 수익으로, 그리고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 회사에 속한 일부 사업 단위들을 팔아서 갚는다.
RJR 나비스코를 놓고 LBO를 할 때 인수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베너벤토는 존슨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식 가격을 한 주에 90달러로 해서 인수한다는 설정 아래, 다음 5년 동안 회사의 현금 흐름 추정치를 계산하고 이것을 회사를 사는 데 필요한 부채와 비교할 때, RJR 나비스코는 레이놀즈 타바코를 제외한 모든 사업 단위를 팔아야만 한다.
LBO라고 불리던 이 인수합병 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디에서 이익이 생겨나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1980년대, 그런 인수합병의 방식이 시작되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고, RJR 나비스코가 200억 달러 규모의 LBO를 하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다보니 비로소 이러한 월스트리트의 인수합병이 옳은지 윤리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었던 시기였다. KKR, 시어슨, 살로먼 브라더스, 모건 스탠리, 퍼스트 보스턴, 골드먼 삭스, 포스트먼 리틀 등 월스트리트의 내노라는 투자 회사와 은행들이 모두 이 수수료 싸움판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는 '탐욕'의 주인공인 로스 존슨이 순진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로스 존슨은 그들의 규칙을 이렇게 외쳤다. “Never play by the rules, never tell the truth, and never pay in cash.(절대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현금으로 지불하지 말라)”
마지막 사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했다. 결말은 어차피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KKR 같은 LBO 전문 투자 회사들은 '사모펀드'라고 정체성을 바꾸고 지금도 여전히 세계를 누비며 기업 사냥을 하고 있다. 그들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경영진이 참여하는 LBO가 아닌 적대적 M&A를 하겠다고 돈으로 무장하고 덤벼들면 피인수기업 입장에서는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 IMF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 사태를 많이 겪었겠다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무식한 머릿속에 퍼즐 조각을 또 하나 끼워 넣은 느낌이다. 벽돌이지만 아주 친절한 책이니 도전해보길 추천한다.
오레오가 먹고 싶어 쿠팡에서 오레오를 검색했다가 제조사가 '동서식품'으로 되어 있어 오레오를 검색해봤다. 나무위키에서 찾은 오레오는 엄청 사연이 많았다. 오레오를 읽다가 발견한 사실은 미국 오레오는 우유가 들어가지 않는 비건이라는 거!! 외국식품점에서 파는 오레오는 대부분 인도네시아나 일본(중국수입) 제품이고 우리나라 오레오보다 가격 대비 양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맛이 다 다르다는 것, 초코 성분은 얼마 들어 있지 않다는 것도 재미있는 오레오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오레오를 만들던 이 책 속의 나비스코는 RJR 나비스코의 라이벌 기업 필립 모리스가 합병했던 식품회사 크래프트가 2000년 인수했고 제과 부문이 몬델리즈로 분사해 나오면서 지금은 이 몬델리즈 아래 있는 상태이다. 먹고 먹히고 돌고 도는 세상.
오레오 - 나무위키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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