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나도 황현산 선생님을 팔로우하고 있다. 트위터의 한 시절, 작가님들이 활발히 활동하셨던 시기였다. 문인들을 동경하던 나도 황현산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날려주시는 트윗을 읽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은 아버지가 2014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남긴 트윗의 모음이다. 조그만 스크린에서 당신이 방금 쓰신 트윗의 오타를 잡아내느라 집중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여행 중에도 트위터를 도통 놓지 못하셔서 가족들이 조금 성화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프신 후에는 트윗이 많이 올라오는 것이 되레 안심이 되곤 하였다.
아버지의 트윗들은 당신의 평소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 텍스트이다. 평소에 즐겨하던 농담들, ‘비상식적인 많은 것들’에 대한 한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인사, 그리고 어느 곳에서 건져올렸는지 가늠할 수 없는 은유와 이야기들이 아버지의 트위터에 모두 담겨 있다. 그 문장들은 적확하고 섬세하다. 아버지는 트윗을 올리실 때도 ‘찰칵’ 소리가 날 때까지 문장을 공들여 다듬곤 하셨다.
1월의 마지막, 설 연휴에 집어든 이 책 때문에 2박 3일의 사천 여행이 조금 괴로웠다. 트위터를 켜서 타임라인의 글을 읽다 보면 멈출 수가 없다. 다들 SNS 앱을 켜면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 그만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끝끝내 더 읽을 것이 뜨지 않을 때까지 그 작은 창을 바라보고 있기 일쑤인데, 아니 이 650 페이지가 넘는 책 전체가 트윗 모음이라니 어디서 어떻게 멈춰야 할지 막막했다. '맞아, 이때 이랬었지' 함께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소개해주신 책 수백 가지에 플래그를 붙였다. 아, 이 플래그는 또 언제 정리한담.
4,322개의 트윗. 이건 2011년 9월에 가입한 내 계정이다. 리트윗과 멘션을 제외하면 이보다 더 적을 것이다. 나를 되도록 드러내지 않도록 조용히, 가끔 짧은 생각을 썼고, 덕분에 팔로워도 100명이 조금 넘을 뿐이다. 따라 가고 싶은 친구들을 아주 많이 팔로잉해서 그들의 글을 그저 탐색하고, 정보를 모아두는 것이 내가 트위터에서 하는 일이다. 격렬한 싸움을 관전하지만 참전할 용기는 없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하여 내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득할 자신이 없고 도망만 치는 비겁한 소비자일 뿐이다.
황현산 선생님은 4년의 시간 동안 8,438개의 트윗을 쓰시며 트위터 전투에 휘말리면 열정적으로 참전하시며 본인의 소리를 내셨다. 비문해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를 ‘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속으로만 되뇌면 될 텐데 싶은 말을 굳이, 부지런하게 답글을 달고 불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엇을 위한 행동인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불장난에 겁을 먹고 만다. 또다시 자기 검열이 시작되고 더 입을 다문다. 그런 걸 보면 트위터의 싸움꾼들은 자기 말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일상 속의 우리의 모습인 거다. 그저 그 익명의 공간 속에서 용기가 조금 더 생기는지 논리도 없이 사람들의 다른 의견을 훼손하려고 든다는 게 눈에 띄는 차이인 것 같다.
황현산 선생님의 트윗 글들을 읽고 있자니 또다른 종류의 자기 검열을 통해 내 목소리를 죽이게 된다.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말이 과연 문법적으로 옳은 것인지, 구조적으로 맞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자신이 없다. 그런 내가 글을 써도 되는지, 말을 해도 되는지. 비평가 앞에서 작아지고 만다.
누가 나에게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도 제대로 내 글을 읽지 않을 텐데 참 쓸모없는 걱정이다.
나는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도 나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논리적으로 글을 읽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젠 생산자로서의 삶을 살아야지.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좀 더 헌신하고 부지런해져야지.
쉽고 단순한 원칙을 가져야지.
트위터를 하면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이것이 맞는 것 같았는데 내일이 되면 새로운 사실이 이것을 뒤집는 근거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나는 그저 열린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 더 나의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분별하게 너무 많은 정보와 말속에서 진짜 내 것들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싶다. 거기에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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