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킬로그램의 삶, 박선아
선배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도 가봤다고 했죠? 이번 주말에 갈까 하는데, 우도 어때요?" 답은 뜬금없었다. "우도에는, 개가 많아." 웃어넘기려는데 선배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우리는 튀김을 먹다 말고 개가 많은 우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혹시 「개를 위한 스테이크」라는 책 봤어?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만 빌려 '개를 위한 무언가'를 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개를 위한 샌드위치'라던가." 그렇게 시작된 작당은 현실이 되었다. 시골 개가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다.
제주의 한 게스트하우스, 조식을 먹으며 개를 위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수프를 한 입 먹고 빵을 꺼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통조림을 뜯었다. 사장님은 그런 내 모습을 몇 번이나 쳐다봤다.
"우리 집에 묵은 한 아가씨는 개사료로 샌드위치를 싸서 나가더라고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모습을 상상하니, 알리지 않는 쪽이 모두에게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우도에 가서 수많은 멍뭉이들에게 고급 샌드위치를 접시에 담아 대접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덕분에 아주 귀여운 강아지들도 잔뜩 나온다. 귀여운 게 세상을 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개를 위한 샌드위치처럼 엉뚱하고 즉흥적인 이야기들이 좋다. 예전엔 이런 푸하핫 이야기들이 내게도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재미없는 삶인가. 게으른 시간들이 부족해서 재밌는 상상력이 부족해진 것 같다. 그래서 자꾸 어른들은 젊은 게, 어린 게 좋은 거라는 말을 한다. 시간을 낭비하며 살 수 있는 그 젊음이 좋은 거다.
어젯밤엔 밤 10시가 넘어 뜬금없이 맥모골이 먹고 싶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고 해야 맞다. 슈퍼에 가서 맥모골 라이트를 사고 달콤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새벽 3시 33분에 이 책에서 만난 귀여운 강아지들을 사진 찍어 놓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내일 걱정을 하지 않고 일탈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게 그 젊음이 돌아온 것 같아서 조금 신이 났다. 그리고 젊음 가득한 20 킬로그램의 삶에 한없이 공감했다.
내 첫 해외여행은 유럽 배낭여행이었는데 8킬로그램 배낭을 메고 다녔다. 나는 짐을 매우 잘 쌌는데, 그만큼 매우 가난했다. 한 달 간의 여행 사진에는 똑같은 옷을 입은 내가 활짝 웃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갈 만큼만 갖고 살고 싶은 꿈이 있다. 우아한 호텔과 크루즈, 리조트의 여행 끝에 다시 젊음을 끌어다 놓고 싶은 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아직 젊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어라운드 매거진에 실린 수필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그 어라운드인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 주변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릅니다'의 그 어라운드 매거진? 그렇게 오래된 잡지였던가... 갸웃하면서 결이 비슷하네 생각하고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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