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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OKS

[140]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

by 신난생강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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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게 된 것들이 있다. 주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새들을 위해서 플라스틱을 절대로 쓰지 않겠다던 철칙주의자가 차차 누군가에게는 플라스틱 컵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게 되고, 그다음에는 나 자신에게 비닐에 싸여 있어도, 공정 과정에 문제가 있어도 어쩌다 소시지 하나 정도는 허락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이 <자루 속에 든 아이를 먹는 흡혈귀> 같다고 느꼈던 죄책감이 사라졌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에너지를 적절한 곳으로 돌려주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최정화

 

감히 이 책을 나의 올해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제목에 별도 다섯 개나 붙였다. 열 개든, 스무 개든 붙여놓고 싶다. 얼마 전에 <벌거벗은 세계사>의 '위기의 지구, 인류 멸망의 시그널'을 본 이후로 혼자서 다시 보고, 엄마랑 다시 보고, 반달씨랑도 함께 다시 봤다. 막연히 아는 것 말고 더 알고 싶고,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도서관에서 여러가지 기후, 환경 관련 책 코너 앞에서 이 책을 골라온 건 우연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우면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칠 것 같아서 가장 쉬워보이는 걸로 골랐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도 냉장고 없이 사는 사람이 있었구나.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을 읽고 냉장고 없는 삶을 꿈꿨는데 여기서 만나고 말았다.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이지만 단단한 이론적인 뒷받침들 위에 경험이 쌓여 있는데 그 '이론적'이라는 것이 구구절절 다가가기 어려운 교과서적인 것들이 아니라 다양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읽는 재미도 있다. 먹거리 오염, 동물권, 비닐봉지 남용, 불필요한 소비, 재활용, 개인의 실천, 기후, 쓰레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환경과 기후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겠지만 재미있는 건 이야기를 여는 인용된 책들이 새롭고 흥미로웠다는 것. 그리고 새마음에는 모든 이야기들이 새롭게 느껴져 노트에 필기까지 해가면서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을 읽었다며 반달씨에게 보여줬더니 반달씨는 휘리릭 넘겨보고 던져버렸지만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다. 마냥 좋았다.

 

나는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식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매 순간 삶 속에서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환경에 대해서 공부할 것은 많지만 실천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는 일을 멈추자. 필요하지 않은 것을 먹는 일을 멈추자. 필요하지 않은 것을 모으는 일을 멈추자. 필요하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는 일을 멈추자. 

특히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앞서 인용한 것처럼 철칙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조건 이걸 하지 않으면 지구가 당장 망해버릴 것처럼 협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구의 근황, 이건 집에 불이 났다는 뜻입니다'라고 인용해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할 수 있는 것만큼만이라도 당장 하기' 그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다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 채식을 지향하지만 햄버거도 먹을 수 있다. 햄버거는 종이 한 장 쓰레기밖에 나오지 않지 않는가? 라고 생각해보는 거다. 반달씨랑 나는 완전히 채식을 하기는 힘들지만 소 한마리가 소형차 한 대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것을 보고 일단 소는 먹지 말자 다짐했다. 

 

 올 해는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다. 제목들을 주욱 보고 있자니 몇 권을 읽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내게 중요하고,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지 배워 온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엔 환경 문제를 다룬 책과 SF 소설에 집중해서 책을 읽어보고 싶다. 작은 삶을 실천하는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기후 재앙의 시대에 적응하며 살기 위한 전지훈련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이토록 명확했던 적이 없었다. 이런 게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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