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러시아 대릴 커닝엄
「푸틴의 러시아」의 글과 그림은 대릴 커닝엄(Darryl Cunningham)이라는 영국 그래픽 저널리스트의 작품이다. 작가 소개가 아주 흥미로워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복잡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라고 평가받는데 폭넓은 자료 조사와 대담하고 간결한 묘사, 서늘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통찰력이 특징이라고 한다. 작품으로는 정신병동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정신병동 이야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속임수와 사기극을 폭로한 「과학이야기」, 2008년 금융위기의 본질을 짚은 「수퍼크래시」, 세계적 부자들이 세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파헤친 「빌리어네어즈」 등이 있다고 한다. 작품 소개들을 읽으니 전부 보고 싶어졌다. 이 책 「푸틴의 러시아」 또한 간결하면서도 내가 궁금했던 것들이 담겨 있어 재밌게 봤기 때문이다.
푸틴이 어떻게 정계에 입문하게 됐는지는 이런저런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익숙한 내용이었다. 소련의 정보기관이었던 KGB 에 들어가고 싶어서 직접 찾아가 어떻게 하면 KGB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는 이야기, 레닌그라드 대학교 법학과에 가서 KGB의 연락을 기다렸다는 이야기,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KGB 활동을 한 것, 대학교 시절 교수였던 아나톨리 솝차크의 아래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시 행정부에서 일을 했었다는 것 등이었다.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을 하고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을 이어받은 모스크바로 푸틴이 입성하는 것에 KGB의 영향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레닌그라드 시 행정부의 부정부패가 폭로되고 솝차크가 해외로 망명한 것과 다르게 푸틴은 모스크바로 가서 요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한다. 소련의 중앙집권적인 통제 경제 정책을 버리는 민영화 과정에서 러시아에는 올리가르히라는 벼락부자들이 생겼다.
푸틴이 옐친의 뒤를 잇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는데 옐친에게는 본인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 부패혐의를 피할 수 있는 확실한 후계자가 필요했고 측근을 살피던 중에 블라디미르 푸틴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유는 푸틴이 러시아와 세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고 옐친과 말을 섞기 위해 애를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졌다고 쓰여있다. 그렇게 푸틴은 총리가 되고 옐친 사임 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일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1999년 12월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3년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라면 푸틴이 지금껏 어떻게 자리를 지켜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반대편에 선 사람들과 올리가르히, 자신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조사를 하는 저널리스트들을 철저하게 제거했다. 러시아의 저널리스트들이 존경스러웠다. 푸틴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했다. 신경독, 방사능 물질 등에 의해 갑작스럽게 죽는 일이 허다했다. 모두 심증은 있으나 드러내 놓고 비난할 수 없었다. 푸틴을 피해 해외로 망명을 해도 안전하지 못했다. 그가 죽이고자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푸틴 키드라는 것. 러시아는 미국에서 장학금과 공을 들여 장학생들을 키웠는데 트럼프가 그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취임 기간 동안 푸틴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푸틴을 비난해야 할 때도 수위를 조절했다고 한다. 최근엔 이러다 미국의 다음 대선에 트럼프가 다시 나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SNS에 떠도는 것을 보았는데 이게 아주 무서운 일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나는 푸틴에 대항할 정치가가 있는지가 항상 궁금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죽었거나 해외로 망명을 했지만, 그럼에도 있었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푸틴에게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어 푸틴의 제 1호 암살대상이며 이미 한 번 암살을 시도했다가 ㅁ실패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구금 중인데 감옥에서도 반전운동을 하는 등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나발니는 독재정부를 고발하고 푸틴의 대저택 및 푸틴 세력의 부정축재 등을 폭로하며 인터넷 매체를 통해 활동을 해왔다. 나발니를 찾아보다가 ‘넥스트 푸틴’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추측들에 대해 정리한 기사를 보았다. 나발디의 주장대로 푸틴이 물러나더라도 다음을 이을 사람들이 푸틴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보여 한숨이 나왔다. 23년 동안 쌓은 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대릴 커닝엄은 이 책을 시작하면서 푸틴은 언제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수십 년간 푸틴에게 유화정책을 펼쳤었다고 한탄한다. 푸틴은 서구권 국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똑똑하고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며 이미 조직적으로 침공하여 도시를 파괴하고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했던 전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문화적으로 특별히 의미가 있고 자원이 풍부한 우크라이나 없이는 러시아 제국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 위대했던 소련의 힘을 되살리고 싶은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이 전쟁은 푸틴이 죽어야 끝나는 것일까? 전쟁을 일으키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한 사람으로서 푸틴의 자의식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쁜 놈 중에 가장 나쁜 놈. 희대의 괴물과 동시대에 살며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변방인의 한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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