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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거 얼만가요?

[하루의 취향] 겨우 술 한 잔

by 신난생강 202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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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퇴사를 도모하던 회사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회사를 그만두고 런던으로 가겠다고, 파리로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만두지 않았고, 그 친구는 용기 있게 런던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친구는 나에게 블로그 주소를 알려왔다. 그 곳에 자신의 소식을 올리겠노라고. 본격 염장 블로그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매일 그 블로그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친구가 올리는 일기는 런던의 날씨 같았다. 흐렸고, 바람이 거셌고, 비가 내렸다. 도무지 그치지 않는 어두운 나날들. 자취를 해본 적도 없는 친구가, 그 먼 런던에 가서 자취를 시작했으니 고생은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친구는 그 고생에 녹아들어 스스로 어두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친구 어쩌나, 라고 나는 매일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N이 런던에 나타났다. 갑자기 런던에 햇살이 쨍하게 비추는 느낌이었다. 그 기운이 서울에 있는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실제로 N은 어두움에서 그녀를 끄집어 내 햇볕에 말렸고, 그녀에게 각종 행복의 기술을 전수해주고 떠났다. 그리고 그 기술의 핵심에 술이 있었다. 

" 1일 1맥주를 실천하도록 해. "

친구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그 말을 지키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이면 동전 몇 개를 챙겨서 동네 펍에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블로그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즈음이었다. 그녀의 글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은. 런던 시내를 탐험하기 시작하고, 같은 미술관에 몇 번이고 방문해서 아름다움에 대해 끝도 없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마침내 그곳에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든 변화의 시작은, 겨우 술 한잔이었다. 


 

하루의 취향
국내도서
저자 : 김민철
출판 : 북라이프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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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술 한 잔은 5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 5개 모두 노트에 필사해두고 가끔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 중에 두 번째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내가 Bournmouth에 살던 무렵 이 챕터를 읽었다면 나는 조금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을까? 아마도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내게는 명쾌한 해답이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꾸역꾸역 거기까지 가 놓고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게 많아서 지루하고 지루하다는 말만 반복했었을까. 그게 행복인지도 모르고. 되돌아보니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1일 1맥주쯤이야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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