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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거 얼만가요?

[전남 구례] 동경장대중탕

by 신난생강 2020.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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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도

동경장대중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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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과 차박을 하면서 새로 생긴 루틴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근처 목욕탕을 방문해서 씻는 것이다. 전날 여행의 피로를 따뜻한 탕 안에서 풀고, 깨끗하게 씻고 나오면 컨디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작년 강원도 여행을 하면서 강릉과 동해에서 차박 후 온천을 갔는데 운이 좋았는지 온천물이 너무 좋아서 피부도 매끈하고 휴가 동안 푹 잘 쉬고 온 것 같은 얼굴이 되어서 온천 마니아가 되어 버린 우리는 이번에도 목욕탕에 도전했다. 

남해여행을 끝내고 하동을 거쳐 구례로 왔더니 이미 어둑어둑한 상태였다. 초록이 쨍한 풍경에 취해 어쩌다 보니 구례까지 넘어와 버렸다. 전날 남해의 캠핑장에서 옆집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쳐 둘 다 피곤했는데 어디든 적당한 곳을 만나면 텐트를 치던가 차박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구례까지 왔다. 문제는 날이 어두워지니 급속하게 피로가 밀려왔던 것. 아저씨가 일단 목욕탕에 몸을 좀 담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목욕탕 표시를 보고 갔더니 모텔이어서 급하게 네이버를 검색했다. 구례 5일장 근처에 동경장대중탕이 나온다. 입구 표지판에 동경장호텔이라고 적혀 있어서 지나치는 바람에 또 한 바퀴를 돌았다. 드디어 도착한 동경장 목욕탕. 중저가호텔이라고 쓰여 있었고 '동경장 호텔 사우나'가 정식 명칭인 듯 보였다. 토요일 저녁이라 제법 차가 많았는데 건물 뒤쪽으로도 주차장이 있다. 

 

 

카운터에 갔더니 너무나 당연하게 숙박 5만 원이라고 하셨다. 당황해서 쭈뼛대며 목욕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번엔 주인분이 당황해하며 인당 6,000원이고 바로 탕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하셨다. 일단 수건을 주지 않으셨다. 입구 쪽이 남탕, 더 안쪽이 여탕이었다. 신발도 대충 오픈된 신발장에 넣고 들어가니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학생 한 명이 옷을 입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만 캐비닛이 있고, 평상이 하나 있는 아주 작은 옛날 목욕탕이었다. 1988년에 영업을 시작한 목욕탕이라고 한다.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옷을 벗고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확인하고 수건과 비누를 챙겨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목욕탕엔 비누도 없었다. 요즘엔 목욕탕에 가면 수건을 주고, 비누도 비치되어 있어 맨몸으로 가도 되는 곳이 많은데, 나의 촉이 들어맞아 챙겨간 수건과 비누를 유용하게 썼다. 시골은 우리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뜨거운 물, 차가운 물 각 하나씩 탕이 있고, 샤워기 4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6개 정도 되고 중앙에 작은 옹달샘 같은 고인 물이 있다. 목욕탕 안에 아무도 없어서 일단 앉는 자리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물은 가운데로 놓고 틀었는데 뜨거웠다. 가져간 비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씻었다. 요즘은 나이를 먹어 깍쟁이처럼 굴지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해졌다. 뜨거운 탕으로 들어가 본격 목욕을 즐겼다. 벽면에 반신욕 하는 법에 대해 적혀 있어 천천히 읽으면서 몸을 담갔다. 몸 담그기 딱 좋은 온도다. 근육의 긴장이 저릿저릿 풀어지는 그 느낌이 좋아 이 맛에 목욕하지 싶다. 바로 옆의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다. 말도 안 되게 온도가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차가웠다. 작고 오래된 목욕탕이라 처음엔 대충 씻고 나가야지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사람도 그렇듯 목욕탕도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래된 것이 가진 내공이 느껴졌다. 천천히 뜨거움과 차가움을 번갈아 즐겼다.

옛날에 엄마 따라 주말에 목욕탕을 가면 사람이 엄청 많아서 뜨거운 열기가 배가 되어 숨이 턱 막혔다. 앉을자리도 없어서 엄마가 저 아줌마 끝나간다고 뒤에 가서 서있으라고 시키면 부끄러워서 눈치 보면서 멀찌감치 줄을 서있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때 밀러 목욕탕을 안 가니까 이런 목욕탕에 오는 것 자체도 낯설고 한편으론 정겹다.

아저씨도 지난번 온천 이후 목욕탕 마니아가 됐다. 여행은 목욕이지, 하면서 둘이서 목욕탕을 찾아 헤매고 30분 뒤에 만나자며 각자 탕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탕에 앉아 앞으로도 여행마다 그 동네의 목욕탕을 탐방하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오, 이걸 블로그에 남겨야겠어, 나는 블로거였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도 동네방네 목욕탕을 리뷰해보도록 하겠다. 

 

 

뒤에 들어온 아줌마 두 분은 숙박을 하는 분들인 것 같았는데, 들어오자마자 수건이 없다고 큰 소리를 내셨고, 샤워기 물줄기가 약하다며 불평하셨다. 물을 계속 틀어놔서 너무 거슬렸다. 안 쓰시면 물 좀 끄라고 낯선 사람에게 간섭할 내공이 아직 되지 않아 흘러넘치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내적 갈등에 시달리다 밖으로 나왔다. 아마도 이 경험이 없었다면 목욕탕에 관한 글을 블로그에 쓰는 행동을 진짜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아무 말도, 행동도 못 하고 돌아선 경험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고 강력하게 아파서 앞으로 이런 경험을 다시 하게 되면 꼭 물을 끄게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으로 일단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강해지겠지. 

늘 그렇듯이 30분을 넘기고 나온 탓에 아저씨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남탕에는 당연하게 수건과 비누가 있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훔쳐가지 않아,라고 말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훔쳐가지 않는다고!  

목욕을 끝내고 캄캄한 밤 달리는 차 안에서 내 양쪽 무릎은 동자스님의 머리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구례 동경장대중탕(구례군 구례읍 봉동길 11-8, 061-781-0300)
  가격 : 6,000원
  남탕 : 수건, 비누 있음 / 여탕 : 수건, 비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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