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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거 얼만가요?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버팀목

by 신난생강 2020.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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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한정 특별판)
국내도서
저자 : 이미경
출판 : 남해의봄날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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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에게 배운 것들 

점점 사라지는 구멍가게를 단지 추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개발과 발전이란 미명 아래 오늘도 우리 가까이 있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자꾸 곱씹게 되는 의미 있는 숙제를 남겼다. 요즘 내가 많이 생각하고 있던 것이라 유난히 이 말이 와 닿았겠지만,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고 이토록 쉽게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일까. 그 속도감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작가는 지난 20년여 년 동안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 펜화를 그렸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작가의 개인적인 추억이 담겨 편집된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련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꼈다. 나는 어쩌다 농촌 언저리에 살게 되면서 농촌의 풍경을 사랑하게 됐다. 길에 핀 이름 모르던 꽃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어제의 푸르름과 오늘의 푸르름의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되었다. 아직 인류애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나의 문제인데, 이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전에 사람이 있는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것은 그 간극을 조금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내게 그 지점을 제시해 준 것으로 의미가 있었다. 

 

오늘 통도사를 방문해 데이트 하면서 우리가 밴라이프를 하게 되면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고, 아저씨도 그러면 함께 그리겠다고 했다. 통도사의 무늬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같은 것을 보며 각자의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데이트 끝에 방문한 커피숍 PAPER GARDEN에서 이 책을 운명처럼 만나서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봤다. 이런 정교한 펜화를 그리진 못하겠지, 하고 일단 위축이 되었지만 그림은 사진이 표현하는 것과 달리 훨씬 따뜻했고, 나도 무엇이라도 그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밴라이프 하면서 이 상점들을 찾아보면 좋겠다, 우리도 이 가게를 찾으면 우리의 그림을 그려보자, 이런 꿈을 꾸는 우리는 평균 나이 대략 40. 이 나이가 되어도 꿈을 꾼다. 

 

작가는 구멍가게 그림에 나무를 꼭 함께 그린다. 지역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옷을 입은 나무를 함께 그린다. 오래된 가게일수록 커다란 나무를 볼 수 있다. 집주인은 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그림 속 시간은 그 장면에 멈춰있다. 오랜 상점도 나무처럼 버팀목이 되어 자리를 오래 지키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그림에 담겼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천천히 상점 하나하나 시선을 주고, 낯 익은 상점 앞 오락기를 발견하고, 투명한 문 너머에 쌓인 물건들을 구경하고, 실눈을 뜨면 보일까 주소를 바라보고, 무심히 놓인 나무 아래 의자 하나, 평상, 자전거, 벽에 걸린 우체통, 담배 표시를 본다. 예전에 우리 동네 가게에도 저런 게 있었지, 우리 친척 할머니도 구멍가게 상점을 하셔서 거기에 갈 때마다 달콤한 베지밀 한 병에 행복했었지, 나의 오랜 추억도 곱씹느라 느린 속도로 책장을 넘겼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없어진 과거의 장소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릴 줄 알게 되었다. 나와 아저씨는 드라이브를 많이 하는데, 우리도 길을 지나다가 이런 아름다운 가게들을 종종 만나고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나와 닮은 취향의 타인을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말 예쁜 가게도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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