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 그거 얼만가요?

[시선으로부터,] 하고 싶은 모든 말

by 신난생강 2020. 8. 27.
반응형

심시선 여사의 계보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책을 끌어안았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 눈을 떴다. 출근을 해야 해서 다시 잠들고 싶었는데 읽다 만 책과 이 생각 저 생각이 섞여 잠을 방해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쳤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진작 살 걸 그랬다. 도서관에서 빌려보겠다고 예약을 걸어놓고 기다리다가 잊고 있었다.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한 날, 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려 가라며 알람 문자가 왔다. 쨌든 이 책을 시기가 되었다는 운명이구나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절반을 읽다가, 엄마에게 보내려고 같은 책을 한 권, 커피 드립백 세트를 주문했다.

 

시선으로부터,
국내도서
저자 : 정세랑
출판 : 문학동네 2020.06.05
상세보기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모든 말이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소설이고, 각각 나오는 인물들이 몇인데 그 모두가 결국 하나의 인격인 것처럼 구구절절 내가 하고픈 말들이 적혀 있어서 즐겁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다. 토하면서 꾸역꾸역 다시 먹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엄마한테도 보내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엄마가 이 책을 읽고 의 목소리를 발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딸들은 엄마를 미워하기도 한다. 모녀는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아직 엄마의 그늘에서 사랑, 연민, 죄책감 등의 마음이 독립하지 못한 나는 심시선 여사의 계보 아래로 옮겨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도 그들처럼 청량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나는 정세랑 작가님 책 중에 피프티 피플을 제일 좋아했다. 모두가 각자 다른 삶이라는 걸 말하는 좋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오롯이 나 그 자체로 살아도 좋다, 사람은 원래 다 다른 게 맞는 거다, 라는 메시지를 굳이 찾아서 읽고 마음속 1순위 소설책으로 꼽아 둘만큼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나 보다. 그런데 시선으로부터,는 개성 강한 각각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삶처럼 수렴되는 것이 매력이었고, 나는 이쪽이 훨씬 더 좋았다.

 

심시선 여사의 자녀들은 10주기 제사를 지내기로 하고, 하와이로 떠난다. 하와이는 심시선 여사의 예술가로서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나름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여태껏 한 번도 제사를 지낸 적이 없었다. 10주기이니 딱 한 번만 해보기로 한 가족들은 하와이에서 심시선 여사에게 줄 가장 좋은 것을 각자 구해오는 숙제를 시작한다. 딸들은 거침없이 우리 집은 모계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딸들, 그 딸들도 모두 구김 없고 개성 있는 캐릭터를 가졌다. 그게 좋았다.

 

아마도 여러 번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이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는 쉼표 없이 한 호흡으로 읽는 걸 좋아하는데 정세랑 작가님의 장편소설은 도저히 그게 되지 않는다.

표지를 보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보건교사 안은영, 결국 하얀 종이 위에 사람들 사이의 지도를 그리며 읽었던 피프티 피플, 계보가 이미 첫 장에 그려져 있어 다시 쉬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시선으로부터,까지도 전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낼 수 없었다. 단어 하나, 상황 하나를 곱씹어야 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캐릭터들을 사랑한다.

 

책을 덮고 나니 하와이에 가서 오래 머무르며 젊은 자연을 여행하고 싶고, 온갖 종류의 책을 더 읽고 싶고, 눈치 보지 않고 나의 삶을 살고 싶어 진다. 새벽 태풍 Bavi의 모퉁이의 비바람을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지치지 않고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용기를 내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