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돈은 몽땅 써라 호리에 다카후미
돈도 안 벌면서 거금의 히피펌을 하고 돌아와 거울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하며 우울해하던 시점에 읽기 딱 좋은 책을 골랐다. 이 책을 읽으면 힘이 날 줄 알았다. 역시.
'매일 하루에 네 시간 책 한 권을 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프로젝트책퉤퉤
일단 읽었고, 밑줄을 그었고, 노션에 밑줄을 필사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어차피 매일 책을 읽으면서 거창하게 프로젝트라고 갖다 붙인 이유는 이제부터는 아웃풋을 만드는 책 읽기를 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매일 다른 책을 한 권 읽는다.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버리고 일단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는다. 읽으면서 열심히 밑줄도 긋고, 생각도 하고, 글이든 그림이든 행동이든 무언가 아웃풋을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던 독후감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 그런 게 있을까 싶지만 그런 것. 그걸 고민하고 있다.
이 책은 돈을 모으는데 힘쓰기 보다 경험에 돈을 쓰라는 말을 하고 있다. 가진 돈을 몽땅 쓰라고까지 말하면서 '경험'을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번에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들은 불안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완전히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불안을 눈치채고 떠난다는 것. 하지만 너무 좋아서 몰두하다 보면 그걸 알고 사람들이 도와준다는 것. 그러니 돈은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싶은 것을 부지런히 하다 보면 방법이 생길 것이라는 것. 이 내용들이 눈에 들어온 건, 요즘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해야 한다. 무엇이든 해보라는 어른의 말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것을 돈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해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해봐야 좋은 게 무엇인지 아니까. 그렇게 살고 싶고, 거기서 찾은 가치들을 공유하는 데서 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점심식사, 어떻게 하셨나요?
물가가 올라 점심 식비도 줄이는 추세라는 뉴스를 봤다. 공무원 식비가 8,000원인데 그래서 관공서 주변은 정식 가격이 대체로 8,000원에 맞춰져 있다. 8,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어림잡아 정식이나 찌개류, 분식, 한그릇 메뉴로 나오는 국수 종류 정도 된다. 감사하게도 구내식당이 있다면 정해진 가격에 고민 없이 점심 식사를 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 정도 메뉴 안에서 돌고 돌 것이다. 특별한 점심 식사라고 해 봐야 2만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정하는데, 보통 직장인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대체로 1만 원 안팎을 점심식사에 쓴다.
「가진 돈은 몽땅 써라」에서 저자는 점심식사는 고민하지 말고 장어덮밥이지,라고 말한다. '5000엔짜리 장어덮밥'에서 중요한 것은 5000엔이 아니다. 장어덮밥 아주 좋지만, 중요한 것이 장어덮밥도 아니다. '5000엔짜리 장어덮밥'이 쏘는 정보샤워가 중요한 것이다.
오늘은 근처 식당에서 한 끼 8,000원짜리 된장찌개가 나오는 정식을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보통 혼자 가지 않을 것이고 동료들과 함께일 것이다. 마음에 맞는 친한 동료이면 즐겁겠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팀 동료들과 함께일 수도 있다. 팀 동료들과 밥 먹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지점이다. 그래서 점심을 먹는다.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간혹 누군가의 연애사나 주말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 같은 것이 식탁 위로 오른다면 흥미진진하겠지만 발전적이거나 드라마틱한 일은 된장 뚝배기가 엎어지지 않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5000엔짜리 점심식사를 하면 뭐가 달라지나? 100엔을 대충 1000원이라고 하면, 5000엔은 5만원 정도 된다. 물가가 많이 올라 우리나라에서 5만 원 정도 되는 식사가 고급이라고 할 수 있나 따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게 비싼 점심식사라고 하자. 그래서 비싼 점심을 먹으면 뭐가 다른가. 내가 메뉴판을 보고 동그라미를 세야 하는 고급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된다면 일단 조금 주눅 들어 조심스럽게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좀 찍고 "너무 맛있다, 역시 비싼 건 다르다, 분위기 고급스럽다" 이 정도 흔한 감탄사 몇 마디로 끝날 것 같은데, 그 중요하다는 정보샤워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점심으로 이런 곳에서 장어덮밥을 먹다니 재미있는 젊은이이군. 다른 집에도 한번 데려가야겠어."라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 정말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팍팍한 살림에 점심값이라도 아껴서 살림에 보태는 것이 좋은 생각일까?
나는 이 5000엔짜리 장어덮밥도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매일 5만원짜리 점심을 먹겠는가. 그런데 한 번씩은 고급 음식점도 가봐야 삶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다. 뭘 대단한 정보를 얻고 배워야 한다기보다 그 속에 있어보는 것, 경험해보는 것 그 자체가 새로운 나를 만든다. 일종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여행도 하다 보면 여행의 기술이 느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서 궁금한 것들이 생기고, 찾아보다 보면 배우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고급 식당 안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을 주문하는지, 접시는 어떤 제품을 썼는지, 화장실엔 어떤 향이 나는지, 테이블 간격은 어느 정도가 편안한지, 후식은 무엇이 있는지, 물은 어떻게 내어주는지, 어린이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혼자 온 사람들이 있는지, 벽에 어떤 그림을 걸었는지, 창문은 어떻게 생겼는지, 음식에는 어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갔는지, 비싼 가격의 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모든 것들이 내가 평소에 다니는 식당과 어떻게 다른지 상상만 해도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노트에 적으며 배우라는 게 아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그게 취향이 되고 감각이 된다. 그렇게 삶의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게 잘 사는 것 아닐까.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가 쌓인 삶은 빛이 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고급식당에 앉아 밥을 먹다가 내게 호기심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격에 맞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화를 할 수 있고, "내가 아는 다른 좋은 식당이 있는데 소개해주고 싶네."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꾸리는 데 5000엔짜리 장어덮밥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앞에 멈춰 한참 생각을 다듬었다. 나는 소박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가끔 5000엔짜리 장어덮밥을 점심식사로 먹는 일은 큰 기쁨일 것이다. 무엇을 향해 달려야할지, 그래서 무엇을 준비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할 일은 '저요! 와 실행' 파트를 잘 꾸려나가는 것이다. 제목을 너무 자극적으로 달아서 이 책의 가치를 깎아먹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좋았다. 사회초년생들보다는 무료하고 고민 많고 지친 30-40대 직장인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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