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OOOKS

[88/1000] 상관없는 거 아닌가?

by 신난생강 2022. 6. 16.
반응형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좀 못 알아들으면 어때? 어차피 잊어버릴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영어 자막을 끄고 넷플릭스를 보는 장면에서 멈췄다. 이 책의 제목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 가장 부합하는 에피소드가 이거 같다고 생각했고 나이 드는 거 참 좋네 싶어 웃었다. 가수 장기하의 책. 별생각 없었고, 도서관에서 영상을 찍어 보겠다며 동영상을 켜고 서가를 훑던 중에 눈에 띄는 주황색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빌려왔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제일 처음 나오는 ‘안경과 왼손’이 이 책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기하는 이런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생각들이 좋았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는 반전이 없고 평범한 결론을 냈지만 그렇다는 걸 알려주는 것까지 재미있었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달리기를 좋아하고,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고, 속이 편해서 채식을 즐기고, 라면도 정성스럽게 먹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내 속의 작은 정보들은 장기하라는 사람이 자아가 크고 괴팍한 성격의 아티스트일 거라고 막연히 형상화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책을 읽고 나니 이 사람은 중간에 단단한 씨를 가진 복숭아 같은 사람, 재미있고 둥글둥글한 사람 같다.

지난 주말 안동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장기하의 얼굴들'이 장기하의 왼손에서 비롯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사고 과정이 배울 점이 있어서 반달씨에게도 읽어보게 했다. ‘장기하가 병이 있었네?’라는 말이 그 챕터를 읽은 후의 반달씨의 유일한 한 마디였다는 게 아쉬웠고, 나는 좋아하는 글을 챕터 째로 필사해서 모아두는 내 비밀 창고에 ‘안경과 왼손’ 챕터를 옮겨뒀다. 돌이켜보면 나쁘기만 했던 일은 없었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흩어져 있던 내 생각을 정돈된 활자로 보는 것 같아서 좋았던 것 같다.

안동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장기하의 노래를 찾아서 틀었는데 단 두 곡을 듣고 멀미가 나서 더 들을 수는 없었다. 글이 좋은 것과 별개로 유튜브에서 장기하 플레이리스트로 랜덤 선택된 노래는 안타깝게도 드라이브에 썩 어울리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까지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일단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오랫동안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다. 사실 나는 같은 이유로 반려동물도 들이지 않는다. 식물도 키우지 않는다. 우리집에 상주하는 존재들 중 생명을 가진 것은 나뿐이다.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을 제대로 건사하는 일에도 휘청휘청하는 사람이다. 숨 쉬는 누군가를 내 품에 맡는 순간 민폐를 끼치지 않을 도리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친구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나는 뭐 자격이 있어서 낳았냐? 낳고 나면 어찌어찌 돼.” 물론 그것은 이미 알고 있다. 어찌어찌 낳아 어찌어찌 키우고 있는 이들이라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더라도, 삶이라는 것은 대체로 어찌어찌 되어갈 뿐이다. 하지만 뭐랄까, 아이가 없는 지금은 그 어찌어찌 흘러가는 물결 속에서 어푸어푸 헤엄이라도 쳐볼 수 있는 반면, 아이를 낳게 되면 집채만한 파도에 가만히 몸을 내맡겨 휩쓸려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만 같다. 한마디로, 나는 아버지로서의 의무 때문에 나의 자유를 양보할 생각이 아직은 없는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부모라는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려다 주변 사람들에게(특히 자신의 자녀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부모는 자녀에게 헌신해야 한다. 헌신할 생각이 없다면 낳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나는 아직 헌신할 생각이 없다. 헌신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은 가지고 있다. 내가 못하는 것이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금의 내 삶은 헌신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이 문단의 글을 모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와 반달씨도 같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문단에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방법이 꼭 육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공감한다. 육아가 없다면 반쪽짜리 성장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하는 것까지도. 세상의 모든 삶을 다 살아볼 수는 없다. 모든 삶은 선택의 영역인 것이고,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삶 또한 그런 것일 텐데 ‘생애주기’라는 것도 점점 자유로운 선택의 부분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최근에 내 삶에서 ‘아이’라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에 대해 슬픔과 좌절감이 몰려와 나를 괴롭혔던 적이 있어 이 부분을 읽으면서 버튼이 눌려졌던 것 같다.

 

덤덤하게 쓰인 글들이 낮과 밤으로 나누어져 쓰여있는데, 나는 낮 쪽이 더 취향이었다. 아마도 낮 쪽은 여행지에서, 밤 쪽은 집에 와서 읽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게 느껴지긴 한다. 그래도 솔직한 글에 솔직한 감상을 남겨두고 싶다. ‘그 밤이 품은 아름다움의 화룡점정은 바로 적막이었다.’라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아 이 사람 싱어송라이터였지… 그렇게 반짝하는 문장들 앞에 간간히 멈춰 딴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나저나 조슈아트리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었고, 나 별구경은 고비사막만 꿈꿨는데 여기도 가고 싶다.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한 환상은 자꾸 쌓여만 간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