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십 대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아함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아함은 여유와 잉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아함은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필요로 하며 품위와 연결된다. 숏커트의 머리 모양이 연상시키는 전투력과 효용성이 사십 대에는 여유 있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내 무의식적 바람을 위협하고 있었다. 더는 강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일도 공부도 충분히 했다. 이제는 긴 머리를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잉여의 시간을 지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
긴 머리가 우아함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표지로서 상징적인 기능을 할 수는 있다고 믿기에 나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반달씨가 이 책을 보여주었다. 너라고.
서른 살의 나는 버섯머리 숏컷이었다. 그 이후 30대는 줄곧 노란색 단발머리였다. 그리고 40을 맞이한 지금은 검은색 긴 생머리이다. 우아함의 상징으로 긴 머리를 동경해서 긴 머리가 된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의 작가님처럼 나도 한 때 유명 연예인들이 나이가 들어도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저게 여유의 표현이구나 생각한 적은 있었다.
이 책은 40대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40대도 장점이 있다고 말을 하려하지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한다. 열탕에 들어가는 거랑 비슷한다고 한다. 들어가기 전에는 뜨거움이 예상되어 겁나고, 처음 발이 물에 닿았을 때는 진짜 뜨겁지만 막상 발을 담그고 천천히 물에 몸을 담그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직장이 있고, 육아를 병행하는 40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40을 맞이한 나로서는 주위의 평범한 이야기였다. 같은 대학 친구라도 어린이의 나이는 제각각이라 관심사도 다르고 서열도 달라진다.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 남편에 대한 이야기, 이웃에 대한 이야기, 친구에 대한 이야기 등 주변에서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사소한 이야기이지만 차분한 성찰이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작은 파장이 인다. 아직 미혼이고 직장까지 관둬버린 나의 40대는 이것과 같지 않겠구나. 햇살 아래 약간의 불안과 약간의 안도가 뒤섞였다. 나는 어느 주차장 차 안에 앉아서 이 책을 읽었다. 다음 여정을 위해 내 봉봉이와 조금 더 친해지는 중이었다.
나는 온천욕을 아주 좋아한다. 열탕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40대가 별로 두렵지 않다. 이제 갓 40이 된 나는 열탕에서 땀을 흘리면서 냉탕에 들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나는 내 40대는 냉탕이었으면 좋겠다. 열탕에서 익은 뜨거운 몸을 조심스럽게 냉탕에 담갔을 때, 정신이 번쩍 들고 온 몸이 찌릿찌릿하고 정수리 끝까지 시원한 그 감각을 누리고 싶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길러 풍성하게 뽀글한 히피펌을 하고 보헤미안이 되고 싶었다. 40이 되고 나서야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꿈을 위해 긴 머리를 하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작년부터 미용실을 가지 못하고 그냥 기르다보니 꿈에 가까워졌다. 내가 느끼기엔 서른보다 별 거 아니고, 용기도 충만한 마흔이다. 출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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