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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0] 40세에 은퇴하다 >> 40세, 은퇴하기 좋은 나이

by 신난생강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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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에 은퇴하다, 김선우

 

40세가 되어 사직서를 냈다. 은퇴하기 좋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FIRE 같은 것이라면 참 좋았겠지만, 30대에 공무원이 된 내게 FIRE는 로또 당첨만큼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다. 파이어는 못해도 일단 ‘어’ 먼저 하고 ‘파이’는 나중에 하면 되지. 눈도 침침해서 엑셀 커서 초점도 안 맞고 신체 배터리는 이미 방전되어 충전을 해도 완충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일단 좀 쉬고 공부해서 파이에 집중하면  뜻 없는 공무원 줄을 붙들고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반달씨가 자꾸 ‘로또에 당첨되면…’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화가 났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못할 것을 왜 약속한단 말인가. 이런 갖가지 생각을 하다가 사표를 내버렸다. 로또 당첨 못돼도 사직서만 내면 그만둘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징징거리는 거 너무 싫어서. 

 



40세에 은퇴한 동지인 김선우 작가님은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40세에 은퇴했다. 기러기 생활 중이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사직서를 내고 미국으로 갔다. 부인은 미국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 중이었고, 첫째는 엄마와 함께 지냈다. 둘째는 한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고 있었다. 가족이 상봉하여 미국의 시골에 자리 잡고 생활을 시작했다.

은퇴에 관한 경제 기사들은 대부분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은퇴 후에 은퇴 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진정한 은퇴를 할 수 있다.


갑자기 은퇴를 하고 오히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어 당황하며 자꾸 합리화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내게는 ‘아무도 아닌 존재여도 괜찮아’, ‘하고 후회하는 것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근면 성실만이 절대선은 아니다’ 같은 말들이 합리화처럼 느껴졌다. 너무 딱 지금의 나 같아서.  
회사를 다니며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이런 말들에 속아 넘어 가 용기 충전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생각의 단계를 지나온 나로서는 사람 다 똑같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 정착한 이유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본격 소비줄이기를 했다. 인터넷도 없애고, TV, 스마트폰, 다리미, 식기세척기, 건조기 등 그런 것까지 없앴나 싶을 단계까지 소비를 줄였다. 집에 학생도 있는데 인터넷을 없앤 것은 과하다 싶었다가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 가량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하니 예전에 호주에서 생활하던 생각이 났다. 없으면 방법을 찾아서 다 살아지는데 편하게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나 싶었다. TV 없이 사는 것은 서울에서 살았던 몇 년간 나도 했었다. 이건 별로 어렵지 않은데, 울산에 사는 동안 구한 집에는 전부 옵션으로 TV가 있어서 TV 보는 시간이 나도 모르게 늘었다. 다른 것들은 얼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데 지금 가장 자신 없는 것은 스마트폰 없애기.  

 

 

 

 

 

 

이쯤 되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회사를 빼고는 삶을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다. 회사만 나가지 않아도 소비 외에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많다.


심심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요즘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이다. 어떻게 심심하지? 회사에 있는 게 심심하지 집에 있는 건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출근할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느긋하게 따뜻한 차 한 잔과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겨 먹고 클래식FM을 들으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있으면 한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충만함을 느낀다. 나의 아침 루틴인데,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도서관에서 빌려와 책을 읽다가 설 연휴 동안 독서 관련 유튜브를 보고 책을 사서 줄 그으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하면서 책을 잔뜩 주문했는데, 예상치 못한 아이패드를 선물 받아 굿노트에 정리하면서 책을 읽으니 굳이 내 책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괜한 소비를 했네 싶은 거다. 내 부동산도 없는데 자리 차지를 하는 책도 내겐 사치인 거다. 김선우 작가님도 일을 벌이고 실패를 해야 배우는 게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나도 천천히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가도록 해야겠다.


자, 이제 다음은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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