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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거 얼만가요?

[고등어를 금하노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과일 쇼핑

by 신난생강 2020.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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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국내도서
저자 : 임혜지
출판 : 푸른숲 200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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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이 책은 내가 두고두고 참 여러번 읽은 책이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반드시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도 그래서 이 책을 연애 초창기에 억지로 읽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사는 삶이 옳다고 생각하고, 이런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당신은 어떤지 물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이고,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이고, 절약을 하는 이야기이고, 가족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그냥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외국에서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아 살고 있는 한국인 작가의 생활 에세이이지만 내게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막연했던 지구의 환경에 대한 부채감을 더해준 책이었다. 씩씩한 이 가족의 이야기는 가끔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제목이 고등어를 금하노라가 된 것은 식탁에 오른 고등어를 본 독일인 남편이 독일에서 바다 생선까지 먹는 것은 변태라고 하며 고등어를 금했기 때문이다. 바다 생선을 안 먹고도 잘 살아온 사람들까지 맛을 들여 엄청나게 먹어대서 씨가 마른다며,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의 먹거리를 빼앗는 셈이므로 변태라고 했다. 아들은 철 이른 딸기가 식탁에 오른 것을 보고 딸기의 원산지를 묻는다. 저자는 쿨하게 뭐, 그런 것 좀 안 먹고 살지 하면서 물 넘어온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한다. 십 년쯤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수입 식재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기에 이런 이야기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 

 


독일 연안인 북해에서 잡은 새우는 지구를 빙 돌아 인건비가 싼 아프리카에서 껍질을 까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다. 운송에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도 그게 독일에서 까는 것보다 비용이 더 싼 것이다. 다른 대륙에서 재배해서 운송한 딸기가 독일산 제철 과일보다 더 싼 것도 같은 이치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자니 별 해괴한 일이 다 일어난다. 같은 사람에게 나라에 따라 각기 다른 값을 매겨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의 세상은 분명히 비합리하고 비인간적이다. 변태가 따로 없다. (중략) 푼돈으로 일상을 꾸려야 하는 아줌마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이 아닐까? 싼 가격에 혹하는 구두쇠 기질이 문제가 아니라 값싸고 질 좋다는 함정에 빠지는 순간 우리도 모르게 변태적 사업에 일조하게 된다는 걸 모르는 게 문제다. 


지금은 푸드마일리지 같은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푸드마일리지를 줄여보자는 움직임이 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나 또한 알면서도 원산지를 하나하나 따져보기엔 모든 것이 다 너무 많고, 여러나라의 원재료가 섞여 원산지 자체를 알 수 없기도 하고, 일은 너무 바쁘고, 나는 지치고, 모든 일에 무기력했다. 

최근에 「식탁위의 세상 : 나는 음식에서 삶을 배웠다」 라는 책을 읽었는데 저자는 스타벅스 콜롬비아산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인생원두를 찾아서 콜롬비아로 떠난다. 초콜릿을 찾아, 바나나를 찾아,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산지를 찾아 직접 경험을 해보고, 산지에서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미국에서의 판매 가격 사이의 간극에 대한 부조리함을 파해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공정무역 커피를 일부러 찾게 되었고 요즘은 아름다운 커피에 원두를 주문한다. 멈출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생산자에게 덜 혹독한 소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덧 비건이 되었다. 비건이 된 이후로 콩은 국내산인지, 옥수수는 국내산인지 살피게 되고, 재료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되도록이면 제철 식재료, 국내산,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려고 한다. 이런 게 결국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이라는 고등어를 금하는 가족의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동안 나도 조금 성장을 했다.

문득 냉장고에서 국내산 콩으로 만든 유부초밥 재료를 꺼내면서 마트의 유부 코너 앞에서 두 배의 차이가 나는 가격 앞에 망설였던 내가 떠올라 오랜만에 좋아했던 책을 찾아 다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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